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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에 접목되는 행동경제학: 습관의 의미

A.G. 래플리 P&G 전 회장과 토론토대 로트먼경영대학원의 로저 L. 마틴 학장은 디자인의 비즈니스 가치를 설득할 수 있는 북미의 절친 콤비다. 래플리 회장은 마케팅사관학교로 불리던 P&G를 디자인 파워하우스로 변신시켜서 다양한 신제품을 성공시킨 사람이고, 마틴 학장은 토론토대 경영대를 혁신컨설팅이 가능한 비즈니스디자인 교육기관으로 변신시킨 사람이다. 이전까지의 토론토대 경영대는 파생상품의 대가인 존 헐 교수가 있던 파이낸스 중심이었다.

래플리와 마틴 두 사람은 전통적인 마케팅과 전략의 대안으로서 고객의 근본적인 니즈를 찾는 디자인을 주장해 왔다. 흥미롭게도 이번 글에서는 고객의 니즈 변화를 맹목적으로 따라가서 혁신적인 제품을 추구하는 대신, 고객의 습관 자체를 추구할 것을 주장했다. 이 주장의 근거로 인스타그램과 마이스페이스를 들었으며,유니레버는 실패하고 페이스북, P&G의 타이드 세제가 성공한 이유도 습관의 시작이 되는 익숙함이라 말했다. 이들은 익숙함을 습관으로 만들고(필수원칙 2), 이를 강화하는 브랜드 확장(필수원칙 3)과 커뮤니케이션 전략(필수원칙 4)을 수행하면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가 형성된다고 결론을 맺었다.

흥미롭게도 본 글에서는 익숙함, 역치, 직관, 처리 유창성, 중독 등 심리학과 경제학이 접목된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용어가 대거 등장하고 있다. 마케팅과 전략의 대안으로 디자인을 받아들인 저자들이 이제는 대니얼 카너먼, 리처드 탈러, 댄 에리얼리 등으로 대표되는 행동경제학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행동경제학은 <블링크>를 쓴 맬컴 글래드웰 같은 사람을 통해서 그 학문적 성과가 외부에 많이 알려졌다. 이제는 습관을 만드는 신상품 개발 모델이 연구될 만큼 실무에 접목되는 속도가 빠르다. 이는 니르 이얄과 라이언 후버가 펴낸 <훅>이라는 책에 잘 나와 있다.

그럼 래플리와 마틴이 쓴 아티클을 심도 있게 살펴보자.

 

 

1. (기획자/마케터에게) ‘소비자가 습관을 형성하게 하라는 ‘시장이나 제품 대신 사람에 집중하라는 의미다.

2. (디자이너에게) ‘습관을 강화하라는 말은 분석이 아니라 직관적인 대안이다.

3. (행동경제학자들에게) 습관 형성과 강화에 필요한 것은 ‘익숙함’뿐이 아니다.

<사례 1>
우리는 종종 감정을 듬뿍 실은 이메일을 보내고 나서 나중에 크게 후회하는 경우가 있다. 술 취해서 ‘업된’ 상태에서 낮에 혼난 상사에게 화풀이하는 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기분이 ‘센치’해진 밤에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다시 만나자고 글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이 맑아진 다음날에는 보낸 메일을 취소할 수가 없다. 이메일 서비스를 운영하는 경영자라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지메일Gmail 엔지니어였던 존 퍼로 Jon Perlow는 공학적 해결책 대신 메일을 작성하는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하고 메일 고글스 Mail Goggles라는 기능을 2008년에 선보였다. 이 기능을 켜놓은 상태에서 메일을 작성하면, 보내기 버튼을 눌러도 곧바로 전송되지 않는다. 그 대신 사칙연산 문제 5개가 들어있는 화면이 등장하면서 제한시간 60초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제한된 시간 내에 정답을 모두 맞히고 다시 한번 보내기 버튼을 눌러야만 비로소 메일이 전송된다. 메일고글스는 산수 문제를 푸는 과정을 통해 메일을 쓰면서 뜨거워졌을지도 모르는 본능을 끄고 차가운 이성을 켜는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카네기멜런대 조지 로웬스타인 George Loewenstein 교수가 진행하는 본능에 관한 연구에 기반하고 있다. 이 기능은 특히 알코올 등의 작용으로 본능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금요일 오후 10시부터 토요일 오전 4시까지 많이 사용되었고 2012년에 서비스가 중단되기 전까지 많은 지메일 사용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지메일의 엔지니어는 비합리성을 ‘차단해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결론: 습관은 강력하다

저자들은 디자인의 가치를 한 단계 높여서 기업의 전략과 한 몸이 되기(align) 위해서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이해를 주력으로 하는 행동경제학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판단한 듯싶다. 즉, 끝없이 변화하는 고객의 니즈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말고 이를 무시해도 괜찮다는 주장을 통해서, 자신들의 기존 주장, 즉 ‘디자인이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더욱 정교화하고 있다. 저자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앞으로 경영학, 마케팅 분야 연구자들과 실무자들이 디자인과 행동경제학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의 인사이트를 더욱 많이 받아들여서, 영역에 상관없이 풍부하고 정교한 비즈니스 개선의 기회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또한 본능, 자기관리, 과거의 경험에 대한 기억, 미래의 감정에 대한 예측 등 다양한 종류의 비합리성을 파고드는 행동경제학을 이해해서 가정이나 직장 또는 사회에서도 더 나은 의사결정이 유도되기를 기대한다.

 

 

평균에 저항하라

2009년 여름, 캐나다에서 한창 박사과정 중일 때 대중교통이 불편한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자동차를 사야 했다. 돈이 많지 않았던 나는 싸고 예쁘면서 유지비가 적게 드는 중고차를 원한다는 어려운 요구를 했고, 딜러는 경매 물품으로 나온 자동차 2대를 제안했다. 하나는 수많은 중고차 구매자가 평균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깔끔한 폭스바겐이었고, 다른 하나는 약 10년 동안 12만 킬로미터를 달려서 유지비가 많이 들 것이 분명한 아우디였다.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선호하지는 않지만 눈길에서 더 안전할 것 같은 아우디를 선택했다. 부디 고장 나지 말라고 엔진 소리를 본 뜬 ‘붕붕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고, 겨울에는 손을 호호 불어가며 손 세차도 하면서 사랑을 듬뿍 쏟았다. 이후 붕붕이는 캐나다 동부의 폭설을 헤치며 나의 삶에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수없이 제공했다. 이처럼 평균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는 선택은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이는 경영 현장에서도 혁신을 일으키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Aeron chair_Herman Miller

1992년 허먼 밀러가 고용한 빌 스텀프(Bill Stumpf)와 돈 채드윅(Don Chadwick)은 기존 의자와 다른, 인체 공학적으로 완벽한 의자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완성된 의자는 고탄성 카본 프레임을 사용한 결과 ‘선사시대의 거대한 곤충 뼈’처럼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회사 근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초기 설문 조사 결과에서도 조금 편안하긴 하지만 너무 못생겼다는 반응을 얻었다. 초기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개선한 후, 이 의자는 편안함의 척도에서는 10점 만점에 8점까지 다다랐으나 예쁨의 척도에서는 6점에도 도달하지 못할 만큼 낮은 평가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편안함과 예쁨은 상관관계가 높게 나오기에 이러한 상황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이듬해에 실시한 전문가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왔다.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은 이 의자가 어떤 부분에서 기존의 의자와 다른지 이해했지만, 실제 구매를 결정하는 기업의 구매 담당자나 인체 공학 전문가들은 대부분 못생겼다는 이유로 싫다는 반응을 보였다.

허먼 밀러는 좋아하는 응답자와 싫어하는 응답자의 점수를 합쳐 평균을 낸 뒤 그에 따라 의자를 바꾸는 대신, 본능을 믿고 그대로 출시했다. 그 결과 에어론(Aeron)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된 이 의자는 1990년대 후반 허먼 밀러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의자로 선정되었다. 이후 약 7백만 개가 판매되었고, 지금도 17초에 한 대씩 생산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흥미롭게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전시된 이후 추가로 진행한 설문에서는 예쁨에서도 8점을 받았다.

 

Resolve_Herman Miller

허먼 밀러는 2000년대 들어서는 의자를 벗어나 사무용 가구에 도전했다. 그리고 직원들이 편안하게 업무를 보는 동시에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기존의 4각형 박스(Cubicle) 형태가 아닌 5각형 벌집(Honey comb) 형태의 혁신적인 사무실 가구를 생각해냈다. 색다른 접근법을 검증받기 위해서 가상으로 사무실을 만든 뒤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봤을 땐 찬성과 반대가 극명하게 나뉘면서 평균적으로는 어떠한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이에 허먼 밀러의 리서치 디렉터인 짐 롱(Jim Long)은 조사 결과를 “건설적으로 거부(Constructive rejection)”한다면서 프로젝트를 변화 없이 그대로 진행했다. 사람들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이유 모두가 ‘새롭다’는 동일한 사실에 기반한다는 점을 알아낸 뒤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우리의 아이디어를 좋아한다면 혁신적이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이 사무용 가구는 리졸브라는 이름으로 출시돼 같은 해 네오콘(NeoCon) 금상 등 여러 상을 휩쓸었다. 또 다음 해에는 경쟁사가 카피 제품을 출시하는 등 사무용 가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이처럼 일상생활이나 경영 현장에서 평균을 거부하면 색다른 결정에 이를 수 있다. 다만 의도적으로 평균을 거부하는 경우 뒤따르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본인이 져야 한다. 붕붕이 자동차는 타이밍 벨트도 직접 교체해야 했고, 아무도 없는 시골길에서 점화플러그가 망가져서 차가 멈추기도 했다. 바로 이러한 책임이 어쩌면 당신의 인생에 풍미를 더해줄 수도 있다.

 

 

고객등급 매기는 ‘불평등 마케팅’… 자칫하면 역효과

해외여행은 즐겁지만 여행지까지 가는 비행은 괴롭다. 비행기를 타려면 번거로운 출국 수속과 보안 검사를 받고 게이트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 탑승 후에는 좁은 기내 통로를 지나 불편한 의자에 몸을 구겨 넣어야 한다. 주변 승객이 갑자기 의자를 움직이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참아야 한다. 스트레스를 못 이겨 기내에서 사고를 치는 사람도 나온다.

토론토대와 하버드대가 최근 공동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비행 중 승객의 정신 상태는 비행기 안의 사회적 구조에서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좌석 등급이 나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자제력을 잃기 쉽다.

Seat

 

연구진은 어느 대형 국제 항공사의 비행 기록 수백만 건을 분석했다. 등급 구분 없이 3등석(이코노미석)만 있는 여객기는 1000회 비행당 평균 0.14건의 기내 난동이 있었다. 그런데 1등석부터 3등석까지 좌석이 구분돼 있는 여객기는 1000회당 기내 난동이 1.58건으로, 이코노미 전용 비행기에 비해 10배 이상으로 많았다.

특히 탑승구가 비행기 앞쪽에 있어서 3등석 승객이 1, 2등석 승객들 사이로 지나가야 하는 경우 기내에서 말썽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욱 높았다. 3등석 승객만 짜증을 내는 게 아니다. 1, 2등석 승객 역시 3등석 승객과 접촉이 많을수록 기내에서 사고를 칠 확률이 올라갔다. 특히 승무원이나 옆자리 승객 등 타인에게 직접 위해를 가하는 비율은 1, 2등석 승객이 3등석 승객보다 훨씬 높았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회에서 상위 계층이나 하위 계층에 속한다는 걸 느끼는 순간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크게 바뀐다. 비행기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넓은 임원실 바로 옆에 일반직원용으로 좁은 칸막이 자리를 마련해 놓은 회사나, 영화가 잘 보이는 좋은 좌석에는 비싼 가격을 책정하고 맨 앞줄에만 할인을 해주는 영화관 같은 곳에서도 사회적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가 돈을 더 쓰게 만들려고 일부러 불평등을 자극하는 마케팅 기법에는 언제나 사건사고의 위험이 따른다는 점을 명심하자.

 

 

보행자 표지판, 달리는 모습으로 바꿨더니 사고 줄어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무려 4621명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보행 중 사망자가 1795명으로 40% 가까이 됐다. 정부는 보행자 사고를 줄이기 위해 위험 지역, 특히 학교 앞 등 어린이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주의 표지판을 세운다. 어른과 아이가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가는 그림이다.

이런 ‘보행자 주의’ 표지판은 나라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 한국이나 미국의 표지판은 그림 속의 어른과 아이가 천천히 걸어서 지나가는 듯한 모습이다. 그런데 러시아와 폴란드의 표지판은 어른과 아이가 급히 달려 나가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어느 쪽이 보행자 사고를 막는 데 더 효과적일까. DML_Crossing

최근 미국 버지니아대와 미시간대, 브리검영대의 학자들이 이를 확인해봤다. 이들은 학생 50명을 대상으로 자동차가 주행하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화면을 바라보는 눈동자의 움직임을 측정했다. 주행 영상에서 한국처럼 천천히 걷는 모습의 보행자 주의 표지판이 등장하자 학생들의 시선은 평균 1.46초 만에 표지판에 고정됐다. 그런데 러시아처럼 다급하게 달려가는 모습의 보행자 주의 표지판(사진)을 보기까지는 0.8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 걷는 모습의 표지판이 등장한 직후 학생들은 실제로 길을 건너는 사람이 있는지 평균 2.04회 화면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달리는 모습의 표지판이 등장했을 때는 이 탐색 횟수가 2.53회로 늘어났다. 결국 표지판에 그려진 그림이 긴박하고 동적일수록 운전자가 표지판을 더 빨리 보고 주변도 더 자주 살피게 되는 것이다.

도로교통 안전을 위해서 정부는 다양한 노력을 한다. 차량 속도를 줄이려고 턱을 만들고 점멸 신호등을 설치한다. 하지만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운전자의 빠른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교통 표지판에 그려진 그림을 좀 더 동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이는 다른 상황에서도 사용될 수 있다. 위험한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지 말라는 표지판도, 위험 물질을 다룰 때는 조심하라는 표지판도 이렇게 다급한 느낌으로 표현하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동적 이미지가 다양한 영역에서 적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디자이너와 일반직원 대화 금지”… BMW는 왜?

레고 블록을 조립해 본 적이 있는지. 어른 세대가 기억하는 레고는 자기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장난감 블록이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설명서를 차근차근 따라 하며 포장 박스에 그려진 대로 멋진 성이나 자동차 따위를 만드는 ‘키트’가 중심이다.

하지만 레고를 설명서대로 조립하는 것이 창의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까? 미국과 노르웨이 경영학자들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는 창의성이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아예 회피하게 만든다.

Lego

 

연구진은 실험으로 이를 확인했다. 실험 참가자들을 셋으로 나눠서 1번 그룹에는 레고 달 탐사선 키트를 만들게 했다. 반면 2번 그룹에는 같은 블록들로 아무것이나 자유롭게 만들게 했다. 마지막 3번 그룹에는 레고를 주지 않았다. 그런 다음 모두에게 논리력 시험과 창의력 시험을 실시했다. 논리력 시험 성적은 비슷했지만, 창의력 시험에선 정해진 설명서대로 블록을 쌓았던 1번 그룹만 유독 성적이 나빴다.

연구진은 추가 실험도 했다. 이번에는 참가자들을 둘로 나눴다. 한 그룹에는 곱셈, 퍼즐 맞추기처럼 ‘분명하게 잘 정의된’ 문제를 풀게 하고, 다른 그룹에는 효과적인 쓰레기 재활용 방법처럼 ‘잘 정의되지 않아(ill-defined)’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문제에 답하게 했다. 그런 다음 모두에게 2개의 레고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하나는 설명서대로 달 탐사선을 만들 수 있는 키트였고, 또 하나는 무작위로 레고 블록이 들어있는 가방이었다. 그 결과, 잘 정의된 문제를 푼 참가자들은 67%가 달 탐사선 키트를 택한 반면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문제를 푼 참가자들은 44%만 키트를 골랐다. 이는 잘 정의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창의적 문제를 아예 선택하지 않도록 방해하는 경향이 있음을 드러낸다.

이 연구 결과는 기업이 혁신을 추구할 때 조직 문화를 분리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미국의 디즈니는 일상 업무를 하는 직원과 상상력이 필요한 일을 하는 직원을 구분해 관리한다. 즉, 두 가지 종류의 일을 한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다. 독일의 BMW도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일반 사무직 직원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도록 분리해 뒀다. 논리력과 창의력이 필요한 문제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친구따라 투표소 간다”… SNS 활용하면 투표율 상승

올해 치러진 20대 총선 최종 투표율은 58%다. 19대 총선보다 3.8%포인트 오르긴 했지만, 다방면에서 투표율 제고를 위한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대한 기대감이 낮은 시민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투표율을 높일 수 있을까?

학계 연구에 따르면 투표를 하라는 사회적 압박을 받은 사람은 투표할 확률이 올라간다. 또한 투표라는 행위도 전염성이 있어서 2인 가구의 경우 한 사람이 투표를 하면 다른 사람이 투표할 경향도 올라간다. 반면 e메일을 통한 독려는 큰 효과가 없다.

DML_Facebook voting그렇다면 요즘 사람들이 많이 쓰는 온라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어떨까? 미국 샌디에이고대 연구진은 페이스북과 함께 2010년 11월 2일 미국 하원의원 선거에서 이를 실험해 봤다. 이날 페이스북에 접속한 미국인들을 무작위로 3개의 그룹으로 나눠 화면 최상단에 각각 다른 정보를 보여 줬다.

첫째 그룹은 선거와 관련된 아무런 메시지도 보여 주지 않았다. 둘째 그룹은 선거 관련 ‘정보성’ 메시지를 보여 줬다. 투표 독려 문구, 가까운 투표장을 알려주는 링크, “나는 투표했다”라고 표시할 수 있는 버튼, 또 그 버튼을 누른 사용자의 수 등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그룹은 정보형 메시지와 더불어 자신의 페이스북 친구 중 투표했다는 버튼을 누른 사람 6명의 사진을 무작위로 보여 줬다. 이것은 일종의 ‘사회적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데이터 분석 결과, 정보성 메시지만을 받은 사용자들은 아무 정보를 받지 않은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투표한 친구들의 사진까지 보여 준 그룹은 투표율이 다른 그룹보다 약 0.4%포인트 높았다.

한국은 선거 당일에 지켜야 할 규칙이 많아서 투표를 독려하기 어렵다. 이럴 때 온라인으로 투표를 독려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나의 온라인 친구들이 투표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방법이 한국의 투표율을 올리는 데도 사용되길 기대한다.

 

항생제 오남용 처방 없게… 의사들을 위한 ‘심리적 처방’

영국의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1928년 페니실린을 발견한 이래 항생제는 세균성 질환을 치료하는 만병통치약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의사들의 처방량이 늘어나면서 약효가 떨어지고, 또 항생제로 해결이 안 되는 ‘슈퍼박테리아’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한국은 항생제 사용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DML_pill의사는 십수 년의 교육과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아야만 하는 전문가 집단이다. 인간의 건강,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를 다루는 만큼 우리가 ‘믿을 수밖에 없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의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항상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한 연구에 따르면 육체적으로 피곤한 상황에서는 항생제 처방을 내릴 확률이 높아진다.

최근에는 심리학을 이용해 의사들의 항생제 처방을 줄이려는 시도가 시작됐다. 예를 들어 항생제 처방 가이드라인을 따르겠다는 서약서에 의사가 자필 서명을 하고 진료실에 붙여 두면, 자필 서명이 없을 때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자신의 약속을 지키려는 동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올해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 이런 심리적 장치의 효과가 잘 나타난다. 이들은 미국 내 47개 병원에서 일하는 248명의 의사들을 18개월 동안 관찰했다. 우선 의사들에게 항생제 남용 방지 교육을 하는 것만으로도 전체 환자에 대한 항생제 처방 비율이 24.1%에서 13.1%로 내려갔다. 또 항생제를 처방할 때마다 그 이유를 시스템에 입력하도록 하거나, 항생제가 들어 있지 않은 처방전의 예시를 보여주는 것, 혹은 자신의 항생제 처방 비율을 다른 의사들과 비교해 보여주는 등 추가적인 심리적 걸림돌을 만들어 놓을 경우 처방비율이 6∼8%까지 떨어짐을 확인했다.

결국 의사가 내릴 수 있는 비합리적인 결정들을 제어하고 의사의 올바른 결정을 유도할 수 있도록 병원 차원이나 사회적 차원에서 도와야 한다. 본 연구 결과가 국내 의약계에도 적용돼 시한폭탄 같은 항생제 오남용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희망한다.

구매 상황이 친환경 제품의 선호도에 미치는 영향: 패키지 색상의 조절 효과

 


연구배경
친환경은 세계 소비자 시장을 주도하는 키워드로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최근에는 구매 상황에 따라 소비자의 친환경 제품 선호도가 변한다는 가설이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의 제품 선호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제품 디자인이 친환경 제품 선호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연구는 부족하다.

연구방법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구매 상황과 함께 제품 디자인의 한 요소인 패키지 색상을 고려하여 2개의 가설을 수립했으며, 서울 소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결과 실험 결과, 첫째, 구매 상황은 친환경 제품에 대한 선호도를 변화시켰다. 과시적 구매 상황에서는 친환경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했다. 둘째, 구매 상황이 친환경 제품 선호도에 미치는 효과는 패키지 색상에 따라서 조절되었다. 패키지 색상이 친환경 색상인 경우 (blue), 구매 상황이 과시적이 되면 친환경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했다. 그러나 패키지 색상이 친환경 색상이 아닌 경우 (magenta), 구매 상황이 과시적이 되어도 친환경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하지 않았다.

결론 본 연구 결과를 통해 친환경 제품과 관련된 제품 디자인과 마케팅 전략 수립에 필요한 시사점을 살펴보고 본 연구의 한계점과 향후 연구 방안을 논의한다.

 

 

DML_Detergent“두 실험의 결과는 연구자뿐만 아니라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디자이너와 마케터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두 번째 실험의 결과를 또 다른 각도에서 분석해 보면, 구매 상황이 과시적일 때에만 패키지 색상이 효과가 있다. 구매 상황이 비과시적인 경우, 패키지 색상의 차이가 친환경 제품에 대한 상대적 선호도 차이로 이어지지 않지만, 구매 상황이 과시적으로 변화하면 친환경 패키지 색상의 친환경 제품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선호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친환경 제품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디자이너가 패키지 색상을 친환경 색상으로 선택해야 하는 동시에, 마케터가 구매 상황도 과시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친환경 생활 용품이나 환경 친화적인 제품을 제조하는 디자이너와 이러한 제품을 판매해야 하는 마케터는 실험 결과를 염두에 두고, 친환경스러운 패키지 색상을 입히는 동시에 타인에게 드러나는 구매 상황을 만드는 전략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pg. 164).”

 

 

운동량 늘려주는 웨어러블기기… 운동의 즐거움은 되레 줄어

최근 애플, 삼성선자, LG전자 등 수많은 기업이 옷처럼 입거나 손목에 차는 ‘웨어러블(wearable)’ 전자기기를 선보였다. 그런데 시계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를 산 사람 중 약 3분의 1은 6개월 안에 사용을 그만둔다고 한다. 질려서, 건강해져서 기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혹은 타인과 비교되는 게 싫어서 등의 이유다.

Etkin, Jordan (forthcoming April 2016), “The Hidden Cost of Personal Quantification,”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한발 더 나아가 미국 듀크대 경영학과 조던 엣킨 교수는 활동을 측정하는 행위가 그 활동 자체의 즐거움을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그는 실험을 통해 이를 확인했다.

첫 번째 실험은 걷기였다. 학생들을 두 무리로 나눠서 한 무리에겐 일반적인 만보계를 줬고 다른 무리에겐 숫자를 볼 수 없는 만보계를 줬다. 실험 결과, 걸음 수를 볼 수 있었던 학생들이 평균적으로 더 많이 걸었다. 하지만 ‘걷는 것이 즐거웠느냐’는 질문에는 걸음 수를 몰랐던 학생들이 더 긍정적으로 답했다.

두 번째 실험은 전자책 읽기였다. 한 무리에겐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지금까지 몇 페이지를 읽었다’는 메시지를 보여줬다. 다른 무리에겐 보여주지 않았다. 걷기 실험과 마찬가지로 페이지 수를 확인한 학생들이 더 많이 읽었지만, ‘즐거웠는가’라는 물음에는 페이지 수를 모르고 읽은 그룹이 더 긍정적이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측정의 부작용을 모른다는 것이다. 걷기 실험에서 88%의 응답자는 만보계를 계속 차고 싶다고 말했고 책 읽기 실험에서도 74%가 페이지 수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인간은 활동을 측정하려는 집착이 있고 이런 집착이 즐거움을 빼앗아갈 것이라는 예상을 못한다.

따라서 일상활동을 측정하는 기기를 만들거나 사용할 때는 측정 자체가 가져오는 역효과를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음식을 언제 얼마나 먹는지 측정하는 것은 먹는 즐거움을 줄이는 효과까지 있어서 살 빼기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활동이나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측정하지 않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측정하는 순간 ‘일’로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친환경 캠페인 성과 높여주는 설득의 노하우

매일 많은 양의 수건과 침대 시트를 세탁해야 하는 숙박업체들은 물과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다. 미국 숙박업계는 이 비용을 현재보다 10% 줄일 수 있다면 연간 600만 t의 온실가스가 감축되는 동시에 7억5000만 달러(약 8600억 원)의 운영비 절감 효과를 볼 것으로 예상한다. 또 미국세탁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객실당 수건 세탁에 하루 평균 6.5달러(약 7500원)가 쓰이며 투숙객들이 수건을 매일 바꾸지 않고 재사용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면 중급 이상 호텔의 경우 연평균 46만 달러(약 5억3000만 원)의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Baca-Motes, Katie, Amber Brown, Ayelet Gneezy, Elizabeth A. Keenan and Leif D. Nelson (2013), “Commitment and Behavior Change,”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39 (5), 1070-1084.
Baca-Motes, Katie, Amber Brown, Ayelet Gneezy, Elizabeth A. Keenan and Leif D. Nelson (2013), “Commitment and Behavior Change,”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39 (5), 1070-1084.

이처럼 호텔에서 수건을 재사용하면 상당한 환경적, 경제적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실제로 수건을 하루 이상 재사용하는 비율은 평균 30% 정도에 그치고 있다. 재사용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문구를 남겨두는 것만으로는 큰 효과가 없다.

심리학적 장치가 이럴 때 도움이 된다. 우선 “이 방에 묵으셨던 다른 투숙객들도 대부분 수건을 재사용했다”고 알리면 재사용 비율이 약 50%까지 증가한다. 더 좋은 방법은 투숙객 스스로 미리 약속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미국에서 리조트 체인을 운영하는 월트디즈니사가 고안한 방법이다. 투숙객에게 “나도 이 호텔에 머무는 동안 환경보호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문구 옆에 “예” 혹은 “아니요”라고 표시하게 만들었더니 수건 재사용률이 59%까지 올라갔다. 더 나아가 “예”라고 약속하면 “지구의 친구”라고 쓰여 있는 작은 기념품을 준다고 했더니 80%까지 치솟았다. 또 기념품을 받은 투숙객은 받지 않은 투숙객보다 나갈 때 방의 불을 끄는 비율도 15% 더 높았다.

이 연구는 기업과 정부, 비영리단체가 시민과 국민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좀 더 세련된 방식을 사용해야 함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에어컨 사용을 자제하거나 우측통행을 유도하기 위해 전단을 붙이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자발적인 약속을 하도록 작지만 매력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