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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환경이 창의성 높여줘

무엇을, 왜 연구했나?

예전에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놀라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창의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우리의 일상에도 창의성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개발자가 짜는 한 줄의 새로운 코드나 상품 기획자가 발견하는 새로운 시장, 또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지식을 즐겁게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은 모두 창의성의 결과물이다. 한발 더 나아가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돈을 쓸 때에도 창의적인 결과물을 원한다. 자신의 취향대로 인테리어를 바꾸고, 독특한 패션 소품을 사고, 나만의 비법이 담긴 요리를 하고, 스스로 디자인한 신발을 구매하는 등 예전보다 창의적인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논문을 쓴 미국 일리노이대, 존스홉킨스대의 마케팅 연구자들은 서구 사회의 풍족함이 창의성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했다. 자원이 풍족하면 제품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법에서 벗어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창의성이 발현되지 않고, 반대로 자원이 부족해야만 제품이 가진 전통적인 기능에 고착(functional fixedness)되지 않기 때문에 창의적인 방식으로 제품을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즉, 자원이 부족해서 한계가 주어지면 제품의 주어진 기능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품 사용에 있어서 창의성이 증대된다고 주장했다.

 

 

무엇을 발견했나?

한 실험에서는 95명의 실험 참가자가 3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동일하게 주어진 Krinkles (LEGO와 비슷하게 생긴 조립 장난감)를 가지고 얼마나 창의적인 장난감을 만드는지 검증했다. 첫 번째 그룹은 곧바로 장난감을 주었고, 두 번째 그룹은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이야기를 에세이로 쓰게 한 뒤 장난감을 주었고, 세 번째 그룹은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이야기를 쓴 뒤 장난감을 주었다. 그 후 15명을 추가로 모집해 앞서 사람들이 만든 장난감이 얼마나 혁신적이고, 새롭고, 독창적인지를 7점 척도로 측정해 평균을 내게 했다. 그 결과, 부족한 성장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쓴 뒤 만든 장난감은(3.72), 풍족한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쓴 뒤 만든 장난감이나(3.04), 아무 이야기도 쓰지 않고 만든 장난감에 비해서(3.17)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은 창의성 점수를 얻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60명의 실험 참가자를 2개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의 참가자에게는 풍족하게 자란 이야기를 쓰라고 하고, 다른 그룹의 참가자에게는 부족하게 자란 이야기를 쓰라고 했다. 이후 대학교가 처한 실제 문제를 얼마나 창의적으로 해결하는지 과제를 주었다. 문제는 이랬다. 최근 포장이사 회사가 실험실의 컴퓨터를 옮기면서 250개의 뽁뽁이 포장지(bubble wrap sheets)를 버리고 갔는데, 이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 5개의 뽁뽁이 포장지를 샘플로 실험실에 비치했으며, 실제로 얼마나 뽁뽁이 포장지의 전통적인 기능에 고착되지 않고 새로운 생각을 하는지 5가지 추가 질문으로 확인하는 과정도 더했다. 이전 실험과 마찬가지로 20명을 추가로 모집해 제안된 아이디어가 얼마나 새로운지 측정하게 했다. 그 결과, 부족하게 자란 이야기를 쓴 뒤 제안한 아이디어의 평균 점수는(3.52) 풍족하게 자란 이야기를 쓴 뒤 제안한 아이디어의 평균 점수에 비해서(2.98) 유의미하게 높은 점수를 얻었다. 또 풍족하게 자란 이야기를 쓴 참가자들이 뽁뽁이 포장지의 기본적인 기능(충격 흡수)에 집착하는 경향이 높았음도 확인했다.

 

연구 결과가 어떤 교훈을 주나?

왜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이 더욱 다양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낼까?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할 때 일반적으로 저항이 가장 적은 방법(POLR · Path Of the Least Resistance)을 떠올린다. 이렇게 해야만 머릿속의 에너지를 가장 적게 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배고픔을 해결할 때에는 근처 피자집에 전화해서 빠른 시간 내에 피자를 배달받는 것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자원 부족으로 제약 조건이 생겨나면 머릿속의 에너지를 사용해 다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피자를 살 돈이 없거나 주변 식당에서 배달이 너무 늦어지는 경우 냉장고를 열고 남은 음식을 최대한 활용해서 요리를 하는 수밖에 없다. 즉, 부족함에 맞닥뜨려지면 자원을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으므로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았던 생각이 유도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가난한 나라에서는 오래된 제품을 창의적으로 재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시간의 제약을 받으면 더욱더 창의적으로 재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결국 자원의 풍족이란 창의성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물질 만능시대인 오늘날에는 자원의 부족, 한계, 제약이 창의성을 촉발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본 연구는 단기적으로 신제품과 서비스를 찾아내는 기획자와 마케터들이 풍족함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예를 들어 신규 상품을 찾거나 새로운 콘셉트를 검증하는 집단 인터뷰인 포커스그룹 인터뷰(focus group interview)를 실행할 때에는 참가자들에게 자원이 풍족하지 않고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다.

 

 

 

“디자이너와 일반직원 대화 금지”… BMW는 왜?

레고 블록을 조립해 본 적이 있는지. 어른 세대가 기억하는 레고는 자기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장난감 블록이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설명서를 차근차근 따라 하며 포장 박스에 그려진 대로 멋진 성이나 자동차 따위를 만드는 ‘키트’가 중심이다.

하지만 레고를 설명서대로 조립하는 것이 창의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까? 미국과 노르웨이 경영학자들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는 창의성이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아예 회피하게 만든다.

Lego

 

연구진은 실험으로 이를 확인했다. 실험 참가자들을 셋으로 나눠서 1번 그룹에는 레고 달 탐사선 키트를 만들게 했다. 반면 2번 그룹에는 같은 블록들로 아무것이나 자유롭게 만들게 했다. 마지막 3번 그룹에는 레고를 주지 않았다. 그런 다음 모두에게 논리력 시험과 창의력 시험을 실시했다. 논리력 시험 성적은 비슷했지만, 창의력 시험에선 정해진 설명서대로 블록을 쌓았던 1번 그룹만 유독 성적이 나빴다.

연구진은 추가 실험도 했다. 이번에는 참가자들을 둘로 나눴다. 한 그룹에는 곱셈, 퍼즐 맞추기처럼 ‘분명하게 잘 정의된’ 문제를 풀게 하고, 다른 그룹에는 효과적인 쓰레기 재활용 방법처럼 ‘잘 정의되지 않아(ill-defined)’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문제에 답하게 했다. 그런 다음 모두에게 2개의 레고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하나는 설명서대로 달 탐사선을 만들 수 있는 키트였고, 또 하나는 무작위로 레고 블록이 들어있는 가방이었다. 그 결과, 잘 정의된 문제를 푼 참가자들은 67%가 달 탐사선 키트를 택한 반면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문제를 푼 참가자들은 44%만 키트를 골랐다. 이는 잘 정의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창의적 문제를 아예 선택하지 않도록 방해하는 경향이 있음을 드러낸다.

이 연구 결과는 기업이 혁신을 추구할 때 조직 문화를 분리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미국의 디즈니는 일상 업무를 하는 직원과 상상력이 필요한 일을 하는 직원을 구분해 관리한다. 즉, 두 가지 종류의 일을 한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다. 독일의 BMW도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일반 사무직 직원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도록 분리해 뒀다. 논리력과 창의력이 필요한 문제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술관 봄나들이… 생각보다 얻는 게 많답니다

봄이 왔다. 곧 일선 학교에선 봄 소풍을 갈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입시 공부에 지친 학생들은 엄숙한 미술관이나 박물관보다는 신나는 놀이공원이나 운동경기장, 영화관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예술작품을 관람할 기회를 잃어도 괜찮은 걸까?

미국 아칸소대 연구진이 2011년 아칸소 주에 있는 크리스털브리지스미술관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한 학기 동안 미술관의 1시간짜리 견학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약 1만 명의 학생과, 다음 학기에 오기로 예정돼 있는 1만 명의 학생을 놓고 동일한 설문을 했다. 설문에는 세 가지 문항이 있었다. 첫째 질문은 낯선 그림을 보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묻는 분석력 테스트였다. 둘째 질문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테스트했다. 예를 들어 그림의 배경이 된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더 공감하는지를 물었다. 마지막 질문은 타인의 의견에 대해 얼마나 관용적인지를 테스트했다.

테스트 결과 미술관 견학을 다녀온 학생들이 아직 다녀오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분석적 능력, 공감 능력, 관용성의 세 가지 척도에서 모두 우수했다. 단 1시간 정도 미술관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의 지성과 감성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특히 이런 미술관 견학의 긍정적 효과는 농촌지역에 거주하는 학생이나 저소득층 학생에게 훨씬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들은 평소 예술작품을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상적인 학교 수업 환경에서도 책이나 영상물 등을 통해 예술에 관한 교육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로 작품이 전시된 장소에 견학을 가면 예술을 받아들이는 학생들의 마음 자세가 달라진다. 우리가 미술관과 박물관을 만들 때 건축과 분위기 조성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미술관 견학이 수학 같은 다른 과목 학습에도 도움이 될까? 이 질문에 연구자 중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수학을 많이 하면 예술을 잘하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없는데, 왜 예술에 많이 노출되면 수학을 잘하게 되는지만 궁금한가요? 예술은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