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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내 제품을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텅 빈 공간의 힘

  • 무엇을, 왜 연구했나?

포시즌스호텔은 다른 호텔 체인에 비해서 방값이 비싸다. 뉴욕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포시즌스의 하룻밤 가격은 약 90만 원. 깔끔한 욕실을 제외하면 방에는 침대 하나와 테이블 위에 놓인 스피커 하나가 전부다. 비슷한 이치로 공항의 항공사 라운지나 야구장의 VIP 박스, 럭셔리 제품을 취급하는 매장은 비치된 물건의 숫자가 적고 단순해 보인다. 이처럼 한 공간 안에 있는 사람이나 물건의 숫자를 제한하거나 아니면 공간을 넓혀서 혼잡도를 낮추면 혹시 더 비싸고 좋아 보이는 것은 아닐까?

미국의 연구자들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공간의 혼잡도 (crowdedness), 공간 내 사람들의 사회계층 (social class), 공간 내 제품의 가치가 각각 연동된다는 가설을 설정했다. 즉 낮은 계층의 사람들은 혼잡한 공간에 가서 가치가 낮은 제품을 구매하고, 높은 계층의 사람들은 덜 혼잡한 공간에 가서 가치가 높은 제품을 구매한다고 가정했다. 이에 따라 똑같은 제품이라도 혼잡도가 낮은 공간에 놓이면 더 비싸고 좋아 보일 것이라고 가정했다.

  • 무엇을 발견했나?

연구자들은 먼저 474명의 온라인 실험 참가자를 대상으로, 공간의 혼잡도에 따른 인식을 조사했다. 우선 이들에게 두 매장의 조감도를 보여줬다. 각각 21명의 손님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는데 첫 번째 매장은 넓어서 덜 혼잡했다. 두 번째 매장은 첫 번째 매장의 절반도 안 될 정도로 좁아서 혼잡했다. 응답자들은 넓은 매장에 있는 사람들의 사회계층이 높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3.04 vs. 3.34, 1=최상위 계층, 5=최하위 계층, 숫자가 낮을 수록 사회계층이 높음). 또 연간 수입도 높을 것이라고 응답했다(6만7000 달러 vs. 5만9000 달러).

다른 실험에서는 매장의 넓이는 일정하게 유지하되 매장에 들어가 있는 사람의 숫자를 조정해서 혼잡도를 3단계로 조작했다. 혼잡도가 낮은 매장(4명), 혼잡도가 중간인 매장(14명), 혼잡도가 높은 매장(35명)이었다. 그리고 각 매장에서 브랜드나 색깔 등의 정보가 없는 구두를 보여주고 이 구두 한 켤레가 얼마인지, 만약 산다면 얼마까지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 물어봤다. 앞 실험에서와 마찬가지로 혼잡도가 낮을 때 매장 내 사람들의 사회계층이 높을 것이라고 예상했고(1.85 vs. 2.46 vs. 2.72), 연간 수입도 높을 것이라고 응답했다(14만3000달러 vs. 10만1000달러 vs. 9만1000달러). 또 혼잡도가 낮은 매장에 진열된 구두의 평가 가격이 더 높았고(253달러 vs. 193달러 vs. 166달러), 응답자들의 지불 의향 금액도 높았다(86.07달러 vs. 74.08달러 vs. 55.90달러).

동일한 방식으로 수행된 추가 실험에서는 응답자가 스스로를 매장 내 사람들과 얼마나 동일시하려는지 측정했다. 응답자들은 매장의 혼잡도가 낮을수록 스스로를 매장 내 사람들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2.53 vs. 1.98, 1=다름, 5=같음).

  • 연구 결과가 어떤 교훈을 주나?

사회 계층이 올라갈수록 더 넓은 공간을 사용한다. 비행기는 일등석이 더 넓고, 높은 지위의 직원은 더 큰 사무실에서 일한다. 우리들은 사회 계층과 공간의 혼잡도가 연관돼 있다는 점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매장에서 제품을 구매한다. 결국 넓고 탁 트인 공간에 한가롭게 놓여진 제품은 좁고 혼잡한 공간에 어지럽게 놓여진 제품에 비해서 돈과 시간이 풍족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구매하는, 비싸고 가치 있는 제품이라고 예상한다. 실제로 많은 돈을 지불하고 ‘빈 공간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같은 제품에 대해서도 더 많은 돈을 낼 용의가 있을 것이다.

매장을 운영하는 기업인들은 종종 주어진 공간을 최대한 사용하려 한다. 빈 공간 없이,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최대한 많은 제품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텅 비어있는 공간은 제품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제품을 구경하는 바람에 제품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매장 내 사람의 수와 제품의 수를 제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타인과의 관계가 행복해지는 지름길

무엇을 왜 연구했나?

사회 계층(social class)이란 규범, 가치, 자신에 대한 해석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정의된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낮은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타인의 어려움에 더 많은 동정심을 보이고, 상황이 어려울 때 돈보다 커뮤니티를 우선시하며,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관련성을 더 많이 찾는다. 즉, 계층이 낮은 사람은 타인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고,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관계 맺기에 더욱 집중하지만 계층이 높은 사람은 타인에 대해서 주의를 덜 기울인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회적 계층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가진 돈이나 힘을 사용해서 해결할 수 있지만 사회적 계층이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야 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에 따라 미국 뉴욕대 심리학자들은 사회적 계층이 높은 사람은 타인에 대한 동기적 관련(motivational relevance, 타인이 나에게 보상을 주거나 위협을 가하는 등의 이유로 타인에게 주의를 기울여야할 정도)이 감소한다는 가설을 도출한 뒤 사회적 계층이 높을수록 타인에게 시각적 주의를 덜 기울이는지 검증했다.

 

 

무엇을 발견했나?

첫 번째 실험에서는 소형 비디오카메라와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장착된 구글글라스(Google Glass)를 사용했다. 뉴욕시의 두 곳에서 보행자를 대상으로 참가자를 모집했다. 71명의 신청자 중에서 뉴욕 거주 기간이 2년 이하라서 자신이 어느 계층에 속하는지 모를 가능성이 있는 외지인을 배제한 뒤 총 61명(남자 53명, 여자 8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했다. 참가자들은 구글글라스를 쓴 상태로 평균 58초가 걸리는 한 블록을 걸어야 했고, 걷는 중에 보이는 모든 것에 원하는 만큼 주의를 기울이고 고개를 돌려서 자세히 쳐다봤다. 헤드업 디스플레이에 보인 모든 것은 VideoBlack이라는 앱을 통해 녹화됐고 실험 이후에 6명의 비디오 판독을 통해 타인을 응시하는 횟수(social gaze)와 시간(visual dwell time)을 측정했다.

거리에서의 실험을 마친 뒤 참가자들은 “사람들은 사회 계층을 이야기할 때 주로 빈곤층, 노동자층, 중산층, 상위 중산층, 상류층을 구분합니다. 스스로가 어느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나요?”라는 5점 척도의 질문에 응답했다. 실험 결과, 높은 사회 계층에 속한다고 응답한 참가자는 낮은 사회 계층에 속한다고 응답한 참가자에 비해 타인을 응시하는 횟수에는 차이가 없었지만 타인을 응시하는 시간은 짧게 나타났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EyeLink 1000라는 아이트래커(눈 움직임 측정·eye-tracking system)를 사용했다. 77명의 뉴욕대 학부생은 구글 스트리트 뷰에 찍힌 뉴욕시에 관한 41개의 사진 중 무작위로 선택된 하나의 사진을 7초 동안 쳐다봤다. 사진 속에는 공사장 인부, 회사원, 노숙자 등 사람들과 함께 자동차, 나무, 가게 등 여러 사물이 들어 있었다. 이전 실험과 마찬가지로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과 사물에 시선이 머무는지 측정했고, 참가자들의 사회 계층에 대한 질문 응답도 분석했다. 실험 결과, 상위 중산층에 속한다고 응답한 참가자들은 노동자층에 속한다고 응답한 참가자들에 비해서 사물에 시선이 머무르는 시간은 비슷했지만 사람에 시선이 머무는 시간은 짧게 나타났다.

 

연구 결과가 어떤 교훈을 주나?

사회 계층은 여러 나라에서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치적 불안정성이나 경제적 격차를 만들어내고 계층 간 불신에 따라서 사회 불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계층의 간극을 줄이려는 다양한 사회적 노력이 있지만 심리학자들이 수행한 본 연구에 따르면 사회 계층의 격차가 만들어내는 여러 문제의 밑바탕에는 타인에 대한 개인적 관심의 차이가 자리 잡고 있다. 상위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타인에게 무관심하다는 개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정치적,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무의미하다. 타인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만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메시지가 그들에게 전달돼야 한다.

미국에서 수행된 이 연구 결과는 타인과의 관계가 중요한 자산인 한국의 고연령 세대에게는 낯설지도 모른다. 사회 계층이 높을수록 타인에게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점차 자신의 업무에 몰두하면서 타인에게 둔감해지는 한국의 저연령 세대에게는 이 연구 결과가 익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혼자 먹는 밥도, 혼자 마시는 술도 좋다. 하지만 가끔은 다른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고객등급 매기는 ‘불평등 마케팅’… 자칫하면 역효과

해외여행은 즐겁지만 여행지까지 가는 비행은 괴롭다. 비행기를 타려면 번거로운 출국 수속과 보안 검사를 받고 게이트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 탑승 후에는 좁은 기내 통로를 지나 불편한 의자에 몸을 구겨 넣어야 한다. 주변 승객이 갑자기 의자를 움직이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참아야 한다. 스트레스를 못 이겨 기내에서 사고를 치는 사람도 나온다.

토론토대와 하버드대가 최근 공동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비행 중 승객의 정신 상태는 비행기 안의 사회적 구조에서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좌석 등급이 나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자제력을 잃기 쉽다.

Seat

 

연구진은 어느 대형 국제 항공사의 비행 기록 수백만 건을 분석했다. 등급 구분 없이 3등석(이코노미석)만 있는 여객기는 1000회 비행당 평균 0.14건의 기내 난동이 있었다. 그런데 1등석부터 3등석까지 좌석이 구분돼 있는 여객기는 1000회당 기내 난동이 1.58건으로, 이코노미 전용 비행기에 비해 10배 이상으로 많았다.

특히 탑승구가 비행기 앞쪽에 있어서 3등석 승객이 1, 2등석 승객들 사이로 지나가야 하는 경우 기내에서 말썽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욱 높았다. 3등석 승객만 짜증을 내는 게 아니다. 1, 2등석 승객 역시 3등석 승객과 접촉이 많을수록 기내에서 사고를 칠 확률이 올라갔다. 특히 승무원이나 옆자리 승객 등 타인에게 직접 위해를 가하는 비율은 1, 2등석 승객이 3등석 승객보다 훨씬 높았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회에서 상위 계층이나 하위 계층에 속한다는 걸 느끼는 순간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크게 바뀐다. 비행기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넓은 임원실 바로 옆에 일반직원용으로 좁은 칸막이 자리를 마련해 놓은 회사나, 영화가 잘 보이는 좋은 좌석에는 비싼 가격을 책정하고 맨 앞줄에만 할인을 해주는 영화관 같은 곳에서도 사회적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가 돈을 더 쓰게 만들려고 일부러 불평등을 자극하는 마케팅 기법에는 언제나 사건사고의 위험이 따른다는 점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