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무려 4621명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보행 중 사망자가 1795명으로 40% 가까이 됐다. 정부는 보행자 사고를 줄이기 위해 위험 지역, 특히 학교 앞 등 어린이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주의 표지판을 세운다. 어른과 아이가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가는 그림이다.
이런 ‘보행자 주의’ 표지판은 나라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 한국이나 미국의 표지판은 그림 속의 어른과 아이가 천천히 걸어서 지나가는 듯한 모습이다. 그런데 러시아와 폴란드의 표지판은 어른과 아이가 급히 달려 나가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어느 쪽이 보행자 사고를 막는 데 더 효과적일까.
최근 미국 버지니아대와 미시간대, 브리검영대의 학자들이 이를 확인해봤다. 이들은 학생 50명을 대상으로 자동차가 주행하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화면을 바라보는 눈동자의 움직임을 측정했다. 주행 영상에서 한국처럼 천천히 걷는 모습의 보행자 주의 표지판이 등장하자 학생들의 시선은 평균 1.46초 만에 표지판에 고정됐다. 그런데 러시아처럼 다급하게 달려가는 모습의 보행자 주의 표지판(사진)을 보기까지는 0.8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 걷는 모습의 표지판이 등장한 직후 학생들은 실제로 길을 건너는 사람이 있는지 평균 2.04회 화면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달리는 모습의 표지판이 등장했을 때는 이 탐색 횟수가 2.53회로 늘어났다. 결국 표지판에 그려진 그림이 긴박하고 동적일수록 운전자가 표지판을 더 빨리 보고 주변도 더 자주 살피게 되는 것이다.
도로교통 안전을 위해서 정부는 다양한 노력을 한다. 차량 속도를 줄이려고 턱을 만들고 점멸 신호등을 설치한다. 하지만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운전자의 빠른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교통 표지판에 그려진 그림을 좀 더 동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이는 다른 상황에서도 사용될 수 있다. 위험한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지 말라는 표지판도, 위험 물질을 다룰 때는 조심하라는 표지판도 이렇게 다급한 느낌으로 표현하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동적 이미지가 다양한 영역에서 적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올해 치러진 20대 총선 최종 투표율은 58%다. 19대 총선보다 3.8%포인트 오르긴 했지만, 다방면에서 투표율 제고를 위한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대한 기대감이 낮은 시민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투표율을 높일 수 있을까?
학계 연구에 따르면 투표를 하라는 사회적 압박을 받은 사람은 투표할 확률이 올라간다. 또한 투표라는 행위도 전염성이 있어서 2인 가구의 경우 한 사람이 투표를 하면 다른 사람이 투표할 경향도 올라간다. 반면 e메일을 통한 독려는 큰 효과가 없다.
그렇다면 요즘 사람들이 많이 쓰는 온라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어떨까? 미국 샌디에이고대 연구진은 페이스북과 함께 2010년 11월 2일 미국 하원의원 선거에서 이를 실험해 봤다. 이날 페이스북에 접속한 미국인들을 무작위로 3개의 그룹으로 나눠 화면 최상단에 각각 다른 정보를 보여 줬다.
첫째 그룹은 선거와 관련된 아무런 메시지도 보여 주지 않았다. 둘째 그룹은 선거 관련 ‘정보성’ 메시지를 보여 줬다. 투표 독려 문구, 가까운 투표장을 알려주는 링크, “나는 투표했다”라고 표시할 수 있는 버튼, 또 그 버튼을 누른 사용자의 수 등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그룹은 정보형 메시지와 더불어 자신의 페이스북 친구 중 투표했다는 버튼을 누른 사람 6명의 사진을 무작위로 보여 줬다. 이것은 일종의 ‘사회적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데이터 분석 결과, 정보성 메시지만을 받은 사용자들은 아무 정보를 받지 않은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투표한 친구들의 사진까지 보여 준 그룹은 투표율이 다른 그룹보다 약 0.4%포인트 높았다.
한국은 선거 당일에 지켜야 할 규칙이 많아서 투표를 독려하기 어렵다. 이럴 때 온라인으로 투표를 독려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나의 온라인 친구들이 투표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방법이 한국의 투표율을 올리는 데도 사용되길 기대한다.
‘뷰티 프리미엄’이라는 말이 있다. 예쁜 제품이 시장에서 더 높은 값을 받고,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더 오래 살고 더 많은 돈을 번다는 속설이다. 이는 생존 가능성이 외모에 비례한다는 진화론적 가설에 기반을 둔다. 미국 마이애미대 연구진은 이를 뒤집어 생각해봤다. 예쁜 것이 사랑받는다면, 반대로 예쁜 것을 고르는 행위가 사람의 기분과 행동에도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연구진은 우선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디자인이 예쁜 커피메이커와 디자인은 덜 예쁘지만 품질은 더 좋은 커피메이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그런 다음 동물을 의학용 실험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제3자의 글을 읽게 하고, 그 글을 쓴 사람이 얼마나 지적이며 그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적인지 평가하게 했다.
실험 결과, 디자인이 예쁜 커피메이커를 선택한 쪽이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제3자가 지적이며 그의 주장이 설득적이라고 대답하는 사례가 더 많았다. 이는 곧 디자인이 예쁜 제품을 선택하는 행위가 타인의 의견에 좀 더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하게 하는 힘을 가졌다는 걸 보여준다. 다른 실험에서는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때 디자인이 예쁜 제품을 더 찾는다는 것도 확인했다.
현대의 소비자들은 우울하거나 타인에게서 상처를 받았을 때 가게에 들러 예쁜 제품들을 사면서 손상된 마음을 치유하는 경우가 있다. 지금까지는 소비자들의 이러한 쇼핑 행태를 비이성적인 중독 행위라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위의 실험에서 보듯이 예쁜 제품을 선택하는 행위는 실제로 자존감을 높이고 남의 의견을 좀 더 개방적으로 받아들이게 해주는 순기능이 있다.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는 기업, 정치, 공공정책 영역에서는 특히 예쁜 제품을 사용하거나 공공시설물을 아름답게 설계하는 것이 더 나은 의사결정을 도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