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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에게 싼값 구매가 상위목표? 구매 유도하는 진정한 동기를 캐라

Article at a Glance

우수한 고객 경험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기술력이나 성능에 천착하기보다 ‘인간으로서의 고객’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인간의 동기를 인지적으로 접근하는 심리학 이론인 목표 시스템 이론(Goal Systems Theory)을 비즈니스에 접목하면 고객의 행동과 구매 동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목표 시스템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목표(Goal)와 하위 목표(Subgoal), 수단(Means)은 인지적으로 연결돼 있다. 어떤 사람이 선택한 수단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하위 목표보다 더 상위에 연결된 목표를 이해함으로써 그 수단을 선택한 진정한 동기를 이해할 수 있다. 일례로 독일 슈퍼마켓 체인 리들(LiDL)은 신선한 식재료를 싸게 구매하는 것은 단순한 하위 목표에 불과하며 진짜 목표는 “원하는 음식을 요리한다”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요리 레서피에 따라 식료품을 분류하고 있다. 목표 시스템 이론이 제안하는 대로 소비자의 상위 목표를 파악해 나가면 구매 행동을 유도하는 진정한 동기를 이해하고 이를 제품 설계에 반영할 수 있다.

… 많은 경영 리더가 경영학과 공학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심리학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워한다. 심리학이 재무적 성과를 증명하는 데 무관심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기업 리더들이 보기에 심리학이 다루는 인간이란 존재가 이해하기 어렵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선입견이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 인간은 세탁기처럼 설계도를 뜯어볼 수 없고 예상 매출 산식 같은 것도 없어 속마음을 도무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행동을 이해하기도, 미래의 행동을 예측하기도 어려워 정답을 알 수 없는 인간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불편해한다.

… 일반적으로 기업은 소비자의 동기를 이해하고 예측하기 위해 트렌드를 주로 파악했다. 연말, 연시에 발간되는 트렌드 리포트를 참고하면서 소비자의 구매 동기를 파악하고 예측하지만 트렌드 리포트는 소비 현상을 사후적으로 설명하는 일부 전문가의 주관적인 주장일 뿐 이론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한계가 있다. 소비자들의 어떤 구매 동기와 목표로 인해 제품이 흥행하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검증하기도 어렵다. 앞서 제시한 목표 시스템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인간의 동기를 파악하는 명확하게 정립된 이론 아래 특정 제품과 관련된 사용자의 행동과 목표를 파악한다면 진정 고객이 원하는 니즈를 반영한 제품을 설계할 수 있다.

… 포도송이처럼 복잡한 목표 시스템을 그리는 일이 지난한 과정일 수 있다.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겠지만 그 과정 자체 만으로도 의의가 크다. 목표 시스템을 그려 나가는 과정을 통해 제품과 기술에 맞췄던 초점이 자연스레 고객으로 옮겨가는 것을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B사의 한 엔지니어는 건조기 관련 목표 시스템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마친 후 “진정 고객 중심으로 사고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됐다. 지금까지 우리가 제품의 기능, 기술, 속성에만 파묻혀 있었단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중요한 교훈이다.

… 목표 시스템의 복잡한 결과물만 보고는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직접 그려본다면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구나’를 직접 느끼고 깨달으면서 제품과 기술에 대한 애정은 어느새 고객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고, 여기서부터 진정한 고객 가치 창출이 시작될 것이다.

팝업스토어의 미래는 ‘데이터 수집-검증하는 실험실’

일부 업계를 중심으로 팝업스토어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기업들이 유행에 편승하면서 비슷한 콘셉트의 팝업스토어가 우후죽순 쏟아져 이제 더 이상 신선한 아이디어가 등장하기 어렵고, 팝업스토어의 수명이 다한 게 아니냐는 회의론이 불거지고 있다…

온라인 마케팅 활동은 데이터로 추적되기 때문에 비용 대비 효과가 분명히 드러나는 반면 팝업스토어를 비롯한 오프라인 마케팅 활동은 측정되는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고 체감되기 쉽다. 그러나 팝업스토어는 오프라인 마케팅이지만 데이터 기반의 성과 측정이 가능하다.

… 넥스트 팝업스토어는 브랜드가 특정 가설을 갖고 시작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검증하는 실험실로 변모할 것으로 전망한다. 프로젝트 렌트는 ‘초콜릿을 프리미엄 디저트로 포지셔닝한다’라는 팝업스토어의 가설을 세운 뒤 평균 체류 시간, 방문객 수 뿐만 아니라 제품에 대한 인상, 재방문 및 입소문 의향 등 정성, 정량적 데이터를 통해 ‘소비자들이 가나초콜릿을 프리미엄 디저트로 즐기는 경험을 낯설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검증했다…

… 이런 이유로 결국 데이터를 수집하는 측정 도구를 붙여 가설을 검증하는 방향으로 팝업스토어가 변모할 것이라 본다. 특정 지역 혹은 특정 소비자를 대상으로 구체적인 가설을 세워 검증하려는 특화된 팝업스토어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브랜드가 세운 가설이 팝업스토어를 통해 잘 검증되면 지속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팝업스토어가 아닌 다른 수단을 활용하는 쪽으로 마케팅 전략을 바꾸는 과정에서 포화 상태에 가까운 팝업스토어 시장이 정리되는 양상을 띨 것이다.

DBR ‘Best Contributor’ 5인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이 창간 15주년을 맞아 창간 이래 최근까지 DBR에 가장 많은 기고를 해주신 필자 다섯 분을 최고 기여자(Best Contributor)로 선정하고 감사패를 수여했습니다. 오랜 시간 DBR의 든든한 파트너로 활동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DBR에 기고하게 된 계기와 의미, 앞으로 바라는 점 등을 들어봤습니다. (가나다순) 이 다섯 분 외에도 한국의 경영계를 대표하는 많은 비즈니스 리더 및 학자들께서 DBR의 지식 아카이브를 독보적인 경영 관련 콘텐츠의 보고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모든 필진께 큰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정리=배미정, 이규열, 최호진 기자

2011년 가을, 캐나다에서 마케팅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때 나의 가장 큰 관심 주제는 인간 중심 접근법인 디자인싱킹과 행동경제학이었다. 디자인과 경영 관련 실무자들의 모임에서 활동하던 중 디자인싱킹에 관한 글을 요청받았다. 그렇게 DBR 11호(2012년 8월 2호)의 스페셜 리포트 ‘Design Thinking’에 첫 기고를 하게 됐다.

처음에는 연구자를 대상으로 하는 논문이 아니라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글을 쓰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하지만 점점 일반 독자에 대한 이해도가 커졌다. 이후로 내가 직접 케이스 스터디 취재를 제안하거나 DBR 기자의 제안으로 다양한 사례를 케이스 스터디로 분석했다. 이를 위해 실무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국내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분들이 겪는 문제와 해결책을 직접 접할 수 있었다. 또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저널워치 코너에도 기고하면서 주목받는 해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어떻게 새로운 해결책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고민할 수 있었다.

DBR 기고 덕분에 가상의 연구자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다. 연구자들은 논문의 핵심적인 가설과 데이터에 집중한다. 하지만 DBR에 기고할 때는 상황과 사람을 자세하게 서술해야 한다. 이를 통해 추상적으로 생성된 인과관계를 진공 상태에서 검증하는 대신 상황과 사람이 고려된 현실에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오래전부터 문제는 현실에서 발견하고, 해결책은 학문에서 발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DBR 기고를 통해 스스로 되고 싶은 사람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DBR 기자들의 다양한 제안과 도움 덕분에 현장에서 이슈를 지속적으로 듣고 그중 내가 아는 학문적 접근법을 적용해 해결책을 제안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DBR 190호(2015년 12월 1호)의 스페셜 리포트 ‘Experience Design’에 기고한 글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많은 실무자가 마케팅의 한계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던 차에 나는 기존의 마케팅 엔진을 사용하되 연료를 바꿔야 한다고 믿었다. 제품이나 시장 관점에서 데이터를 주입하는 대신 개인 고객 관점의 경험을 주입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러한 믿음을 최근의 여러 사례로 뒷받침했다. 이후에 고객 경험 (CX, Customer eXperience)이 급부상하면서 학계와 기업에서 많은 협업 요청을 받았고 연구 주제로도 구체화할 수 있었다. DBR 272호(2019년 5월 1호)에 기고한 신한카드의 초개인화 마케팅 프로세스에 관한 케이스 스터디는 내가 직접 진행한 신한카드와의 산학 프로젝트를 설명한 글로 행동경제학을 접목해 엄밀하게 실험을 진행한 결과를 소개한 것이다. 58만 명이라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데이터를 수집했더니 학계에서는 예측하지 못한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행동경제학이 현실에 적용된 모범 사례로 국내 경영대학의 소비자행동 박사 과정에서도 사례로 읽는다고 전해 들었다.

DBR은 현실 이야기를 전해주는, 국내 유일의 비즈니스 사례 전문지다. 핫하게 떠오르는 기업의 사례를 다루면서 한국이라는 상황과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을 고려하니 해당 기업이 내리는 의사결정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장단점을 예측할 수 있다. 특히 예상치 못한 독특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영감을 많이 받는다. 동시에 현실에 관심이 많은 연구자들이 새로운 시각을 집어넣기도 한다. 케이스 스터디 기사의 마지막에 소개되는 연구자의 시각은 하나의 동일한 사례를 보면서도 어떤 부분이 흥미로운 연구 소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독특한 공간이다. 독자들은 연구자를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연구자와 대화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앞으로 DBR에서 다루는 사례가 HBR Case study처럼 학문 후속 세대를 위한 교육 자료로 적극 지원되길 바란다. 독자들에게 사례의 빈공간을 메꿔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 또 나와 같은 필자들이 더 많이 발굴돼서 학계의 연구자들이 현실을 좇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궁극적으로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가 학계에 더 많이 퍼지기를 기원한다.

주재우 (2023), “‘DBR Best Contributor’ 5인, “학계 업계 잇는 최고의 지식 보고”” March (1), 22-24.

+ “더 깊이 공감, 더 많이 공유: 여성면도기의 신화 쓰다,” 2012, August (2), 90-93.

+“좋은 경험은 고객을 움직인다. 샤오미도, 산펠레그노도 마케팅 강자가 된다,” 2015, December (1), 74-82.

+ “2만5000개 소비패턴 분석해서 혜택 제안 필요할 때 귀신같이 알려주는 ‘똑똑 카드’” 2019, May (1), 76-89.

고객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취향-지식에 귀 기울여

다양한 취향과 지식을 갖춘 전문가는 자신이 전문성을 가진 영역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해 시장에 론칭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문성이 시장에서는 양날의 검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는 취향과 지식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좀 더 나은 취향과 지식을 ‘가르치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시장을 이해하기보다는 시장을 이끌어가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구매하는 사람은 일반인이다. 일반인이 서비스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반인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법, 즉 고객 경험에 관한 근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디스트릭트는 전문가 집단이다. 디스트릭트는 라이브파크와 플레이케이 팝을 통해서 취향과 지식을 전달하려고 시도했다. 두 번의 시도 모두 시장에서 실패했다. 비싼 비용을 지불했지만 일반인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법이라는 귀중한 교훈을 학습했고, 학습의 결과를 세 번째 시도한 아르떼뮤지엄에 적용했다. 아르떼뮤지엄은 전문가와 일반인의 간극을 줄였고 결국 제품- 시장 맞춤(product-market fit)이 일어나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 다. 아르떼뮤지엄의 성공 요인 중 ‘일반인의 생각과 행동법’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고자 한다.

1. 전문가가 제공하는 수준 높은 기술보다 내가 직접 하는 경험이 좋다

2. 전문가가 이야기하는 완성도보다 내가 이해하고 공감하는 내용이 중요하다.

3. 전문가가 주는 너무 새로운 경험보다 내가 이해할 만한 적당한 새로움이 좋다

디스트릭트의 과거 전시가 일반인에게 준 가장 큰 강점이자 약점은 ‘지나친 새로움’이었다. 매운맛의 정도를 조정해서 순한 맛의 새로움을 만들기 위해서는 콘텐츠에 대한 익숙함이 필수적이다. 아르떼 뮤지엄은 제주에 먼저 문을 연 빛의 벙커 전시를 통해 알게 된 명화의 익숙함을 적극 이용했 다. 가든의 명화는 자연이라는 전체 콘셉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이 좋아하는 소재로 포함되면 리스크가 줄어드는 보험 효과를 발휘할 수 있 다. 작품에 담길 명화를 선택할 때도 대중성을 고려했다. 일반인 관람객도 아는 그림이 등장해야만 사진을 찍고 공유하고 싶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이다.

일반인들이 적당한 정도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향은 최근의 명화 연구에서 잘 드러난다. 이 연구는 미술 작품을 제품 패키지에 사용했을 때 고객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명화 차용 효과(Art infusion)를 조사했다. 국내 미술 교과서를 바탕으로 근대와 현대를 대표하는 6개의 명화를 선택하고 각 명화를 차용한 6개의 휴대폰 케이스를 가상의 제품으로 제작한 뒤 380명의 대학생 을 대상으로 명화와 명화 차용 제품에 대한 실험을 수행했다. 실험 결과, 일반인들은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지만 차용된 정도가 낮은 명화가 더해진 휴대폰 케이스를 좋아하는 성향이 크게 나타났다. (그림 1)

실제로 2021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의 도심 길거리 예술 대회, ‘어번 브레이크(Urban Break)’에서도 일반인들의 관심이 집중된 작품은 급진적으로 새로운 작품이 아니었음을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예술 작품에 어려움을 느끼는 대다수의 일반인에게는 모두가 아는 기존의 유명 작품에 작가의 터치가 약간 더해진 작품에 인파가 몰렸다. 예를 들어, 모나리자 그림에 마스크와 땀 한 방울이 더해졌거나, 다비드 상에 기관총의 탄피가 더해졌거나, 자유의 여신상이 코를 후비고 있는 작품 앞에서 많은 관람객이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눴다.(그림 2) 이해할 만한 수준의 새로움을 적당히 가미하기 위해서 작가들이 기존 작품을 차용하는 방법이 흥미로웠다.

… 오랜 노력으로 취향과 지식으로 무장된 전문가가 단순 무식해 보이는 일반인에게 귀 기울이기는 무척 어렵다. 하지만 디스트릭트는 두 번의 실패를 겪은 뒤 일반인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아래의 세 가지 방법을 터득했고, 아르떼 뮤지엄에 적용해 시장에서 성공했다.

  1. 전문가가 제공하는 수준 높은 기술보다 내가 직접 하는 경험이 좋다.
  2. 전문가가 이야기하는 완성도보다 내가 이해하고 공감하는 내용이 중요하다.
  3. 전문가가 주는 너무 새로운 경험보다 내가 이해할 만한 적당한 새 로움이 좋다.

전문가와 다른 일반인의 특성은 이외에도 무궁무진하다. 디스트릭트는 아르떼뮤지엄에서에서 일반인의 특성을 또 하나 더 배울 것이며 이를 이후의 사업에 적용해 시장에서의 성공 확률을 한 차례 더욱 높일 것이다. 학습하는 기업의 미래는 아름답다. 생존을 고민하는 전문가 집단이라면 디스트릭트의 사례를 참고해 고객 경험에 대한 학습을 보다 넓고, 더 깊게, 끊임없이 지속하기를 바란다.

주재우 (2022), “고객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취향-지식에 귀 기울여,” 동아비즈니스리뷰, February (2), 74-76.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가 과정으로 전달되게

모베러웍스는 얼핏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일을 내가 함께하는’ 협업을 수행한다. 다만 기존의 일반적인 협업과 다른 점은 협업의 결과뿐만 아니라 협업의 과정을 제3자인 일반 소비자에게 노출한다는 점이다. 단순 노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협업의 과정에까지 소비자를 참여시켜 참여감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이처럼 소비자들이 협업 과정에 노출되거나 참여하는 코크리에이션(co-creation) 또는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을 수행하면 소비자들이 협업의 결과물을 더 좋아하게 된다는 결과는 일견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소비자와의 협업이 쉽지만은 않다. 소비자와의 의사소통 과정 중 의도하지 않은 왜곡이 발생할 수 있고, 전문성이 부족한 소비자의 제안이 최종 결과물의 수준을 떨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원하지 않는 소비자가 전체 방향을 다르게 가져가서 업계 프로나 클라이언트의 입맛에 맞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기업이 “실패 확률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소비자와 협업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릴 때 정확하게 어떤 점을 강조해야 할까? 언제 소비자가 기업을 더 좋아하고 협업의 결과물을 구매하게 될까? 본 사례의 흥미로운 점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협업의 전략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관련 마케팅 연구를 바탕으로 기업에 세 가지 접근 방식을 제안한다.

첫째, 다른 누군가가 참여했다는 소식을 알리자…

둘째, 우리가 노력한다는 점을 알리자

전통적으로 소비자들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할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즉, 품질이 좋거나 배송이 빠르거나 가격이 낮으면 기업의 노력 여하와 상관없이 소비자들은 제품을 좋아할 것으로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결과만큼이나 과정도 중요하게 고려한다. 예를 들어 가게에 과일이 예쁘게 진열된 경우, 과일 진열에 들인 노력에 감동하며 그 노력에 보상하려고 노력한다. 즉, 과일이 예쁘게 진열됐다고 해서 과일이 더 신선하거나 가격이 더 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과정에 들이는 노력에 보상하려는 심리가 생긴다는 의미다. 이러한 보상 심리는 과일이 아니라 다른 제품에 대한 구매에도 연결돼 식료품이 아니라 다른 제품을 사더라도 매장 담당자의 노력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려는 마음이 생겨난다.

2005년 미국의 한 연구자는 소비자가 다른 사람의 노력에 얼마나 가치를 매기는지 연구했다. 모든 참가자에게 부동산 중개인 두 명을 100점 만점으로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두 명의 중개인이 같은 아파트 정보를 정리하기 위해서 다르게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한 명의 중개인은 컴퓨터를 사용해 1시간 만에 정보를 정리했다고 알려줬고, 다른 한 명의 중개인은 수작업으로 9시간이 걸렸다고 알려줬다. 응답을 분석한 결과, 사람들은 수작업으로 오랫동안 노력한 중개인(68점)을 컴퓨터로 금방 일 처리를 끝낸 중개인(50점)보다 더 높게 평가했다.

셋째, 우리가 전문가라는 점을 알리자

… 모베러웍스는 소비자와의 협업이 가진 본질적인 힘을 보여준 사례다. 핵심은 협업의 과정을 적극적으로 노출하고 협업의 과정에 소비자를 참여시키는 데 있다. 하지만 소비자와의 협업을 처음 시도하는 기업에는 이 과정이 쉽지 않고 결과가 불확실하며 성공하더라도 상당한 비용이 수반되는 일일 것이다. 이처럼 값비싼 협업을 수행할 때는 최종 소비자가 가치를 느끼는 협업의 특성을 정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 알려진 마케팅 연구 결과에 따르면 1) 다른 누군가가 참여했다는 소식을 알리고 2) 우리가 노력한다는 점을 알리고 3) 우리가 전문가라는 점을 알릴 때 소비자가 기업을 더 좋아하게 만들고 협업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모베러웍스의 놀라운 점은 결과물의 인기는 식더라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는 계속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기업들도 이러한 철학을 받아들여서 ‘전문가의 노력이 과정으로 전달되는’ 메시지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주재우 (2021),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가 과정으로 전달되게,” 동아비즈니스리뷰, October (2), 88-90.

2만5000개 소비패턴 분석해서 혜택 제안 필요할 때 귀신같이 알려주는 ‘똑똑 카드’

Article at a Glance

신한카드는 고객 개개인의 취향과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할인과 이벤트 등의 혜택을 앱으로 전달하는 초(超)개인화 프로젝트를 3년에 걸쳐 전사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하는 것처럼 빅데이터 분석과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사용해 2만5000개의 소비 패턴을 정립하고 그에 따라 고객이 딱 원하는 혜택을, 딱 원하는 타이밍, 메시지, 채널(TMC)로 자동 전달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이를 위해 성별, 연령, 요일, 날씨 등에 따라 할인 혜택을 전하는 마케팅 메시지가 달라지는 행동경제학 실험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규모로 실시했다.

… 초개인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담당자들이 문제의식을 가진 게 있었다. 빅데이터사업본부 이중재 부부장은 “시스템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객의 입장에서는 느끼는 것은 자기에게 떨어지는 메시지이며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고객이 초개인화를 실감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한다. 즉, TMC 중에서 T(타이밍)와 C(채널)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개선해나갈 수 있지만 M(메시지)은 근원적으로 섬세한 인간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 해법으로 거론됐다. 행동경제학은 풍부한 연구 결과와 다양한 성공 사례로 해외에서는 그 효과가 증명됐다. 최근 20년간 북미 마케팅 박사 과정의 절반 이상은 행동경제학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서구의 공공기관이나 기업 현장에서도 다양한 프로젝트가 수행되고 있다.

…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며 연구팀은 행동경제학의 여러 기법을 수집한 뒤 이 실험에 적용 가능한지 여부를 검토했다. 먼저 행동경제학 연구자들의 바이블인 ‘Behavioral Economics Guide’와 ‘Nudge Database’를 기반으로 하고 최신 연구에서 밝혀진 새로운 기법을 추가해 총 108개의 기법을 수집했다. 이 중에서 중복되거나 충돌하는 기법은 제외하고, 2000년 이후 반복적으로 효과가 검증돼 연구자들에게 의미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기법들만 10개 남겼다. 선택된 10개의 기법이 적용된 메시지를 제작한 뒤 연구팀은 신한카드 담당자들과 내용을 공유했다. 현업 경험이 많은 사람이 보기에는 어떤 기법이 좋은지에 대한 선호도도 알아야 했고, 규제가 빡빡한 금융업의 특성상 준법감시팀의 심의도 통과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5가지 행동경제학 기법이 선택됐다.

… 신한카드 마케팅전략 부서는 매회 약 20만 명의 페이판 앱 사용자에게 6가지 메시지 중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서 발송했다. 메시지당 약 3만 3000명이 배정된 셈이다. 발송일은 2019년 1월 11일(금), 1월15일(화), 1월17일(목)이었다… 종합하자면, 이 실험은 무작위로 선발된 59만 2589명의 신한카드 가입자를 대상으로 동일한 오퍼를 동일한 채널로 보내되 조건을 18가지(6가지 메시지 × 3가지 타이밍)로 달리 만들어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행동경제학을 적용한 커뮤니케이션이 효과가 있는지를 검증한 것이다.

… 요일과 날씨에 따라서 행동경제학의 효과가 다르다는 결과를 해석할 때에도 한국적 특성을 고려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인은 일상에서 합리적으로 생각하면서 바쁘게 살아가는 편이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행동경제학이 전반적으로 효과가 없다. 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나는 특수 상황에서는 행동경제학이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감정적 혹은 쾌락적으로 생각할 여유가 생기는 주말과 금요일, 또 미세먼지 때문에 생기는 부정적 정서를 (쇼핑 등으로) 환기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경우 등이다. 즉, 한국에서는 일상을 벗어나는 상황이 생겨야만 비합리성이 관여하는 행동경제학이 효과가 있음이 이 실험에서 확인됐다.

… “흐름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주재우 교수와 함께 실험을 주도한 신한카드 이중재 부부장의 말이다. “예전에는 기업이 고객에게 혜택을 쫙 뿌리고 알아서 쓰라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점점 고객 각자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소비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고민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 그래야 차별점을 발견할 수 있다. 누가 이런 요일, 이런 날씨를 좋아하는지 알아내면 그에 맞는 메시지가 나가야 한다. 이런 것들을 시스템화하는 것이 초개인화다.”

미래 지향 강조하려면 ‘동작 얼리기’ 브랜드 개성 키워주는 디자인의 힘

디자인은 브랜드 이미지를 결정하고 개성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데 매우 효과적인 영역이다. 이 글에서는 기업이 시도해 볼 수 있는 다섯 가지 종류의 디자인 작업을 소개한다. 학계에서의 연구를 통해 실증적 효과가 입증된 방법이므로 현장에서 바로 적용해볼 만하다.

1. 미래 지향적인 브랜드는 로고에 ‘동작 얼리기’를 가미한다.

2. 인간미가 필요한 브랜드는 손으로 쓴 브랜드 폰트를 사용한다.

3. 브랜드 퍼스널리티를 고려해 패키지 디자인을 교체한다.

4. 원산지 효과가 필요한 브랜드는 생산 공장을 강조한다.

5. 혁신적 브랜드는 시각과 촉각 사이의 감각 불일치를 적용한다.

… 174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절반의 응답자에게는 오케스트라가 과거의 음악에 멈추지 않고 미래 음악을 반영하는 대표주자라고 설명했고, 다른 절반에게는 오케스트라가 최신 음악 트렌드를 따르지 않고 클래식 음악을 반영하는 대표주자라고 설명했다. 그 후 두 가지 중 하나를 로고로 사용하는 오케스트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물어봤더니 오케스트라가 미래 음악의 대표주자일 때는 동적 로고일 때 선호도가 높았고, 오케스트라가 전통음악의 대표주자일 때는 로고가 정적일 때 선호도가 높았다…

… 만약 제품을 생산하는 장소에서 진정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좀 더 재미있는 방법으로 이를 확보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컨대 Made in China는 세계에 잘 알려진 단어다. 애플은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라고 쓴다. China 대신 California를 내세운 것이다. Microsoft가 한때 판매했던 Zune 제품에는 Hello from Seattle, Assembled in China라고 쓰여 있었다. 역시 중국 대신 본사가 있는 시애틀을 강조한 문구다. 국내 디자인 에이전시인 플러스엑스가 생산한 휴대폰 케이스에는 Designed by Lab C in Gangnam을 썼다. ‘강남’을 통해 원산지 효과를 얻으려 한 경우다…

… 감각 불일치는 시각과 촉각뿐만 아니라 시각과 미각 사이에서도 존재하며 반응이 나이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그림은 특정 식당에서 여름철에 제공하는 아이스티다. 필자와 함께 식당에 간 대부분의 동료들은 기대하는 아이스티의 색깔이 아니므로 맛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꺼렸다. 하지만 같은 식당을 찾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시원한 색깔을 갖고 있고 재미있어 보인다며 좋아했다…

1930년대의 상하이를 옮겨놓은 듯… 고객들은 이미 눈으로 맛을 본다

한국에서의 중국 음식은 파인다이닝(호텔 중식당), 회식과 점심식사 때 주로 이용하는 오피스 상권 중식당, 동네 중국집 등 3개 카테고리로 구분됐다. 주요 고객은 중장년 남성과 가족 단위였다. 외식업체 썬앳푸드는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여성들끼리 혹은 커플이 놀러 오고 싶은 트렌디 중식당 ‘모던눌랑’을 기획했다. 유동인구나 대중교통이 부족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SNS와 입소문을 통해 시장에 안착하고 ‘차이니즈 다이닝 바’ 유행을 시작했다. 성공 비결은 다음과 같다.

  1. ‘1930년대 국제도시 상하이의 신여성’이라는 구체적 이미지를 가져와 고객과 내부 직원 모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브랜드 스토리를 만듦
  2. 인테리어와 메뉴뿐 아니라 식기와 음악, 종업원 복장, 향기까지 일관성 있는 브랜드를 구축
  3. 기존 중식당과의 차별화를 위해 짜장면 등 기본 메뉴까지 버리려는 시도

… 2015년 9월 문을 연 모던눌랑 1호점은 신세계가 운영하는 강남 센트럴시티 쇼핑몰 옥외주차장 최상층부에 있다. ‘파미에가든’이라 불리는, 사평대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상가 라인이다. 레스토랑으로서의 입지는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림1) 대로변 남측에서 보면 1층이지만 유동인구가 있는 북측(고속터미널과 신세계백화점 측)에서 보면 5층에 해당한다. 주차장이 가로막고 있는 데다가 높이 차이 때문에 아래쪽에서는 위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또 나머지 세 방향에서는 10차선가량의 도로가 둘러싸고 있다. 특히 매장 정면의 사평대로는 고속버스 전용 도로와 지하차도까지 있어서 도보 통행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가까운 횡단보도가 300m 이상 떨어져 있다. 강남 한복판이지만 주차장과 차도로 둘러싸인 외로운 섬 같은 입지다. 도보 통행자는 가물에 콩 나듯 보일 뿐이다.

…필라멘트는 SNS 연관어 분석도 실시했다. ‘차이니즈 레스토랑’ ‘프렌치 레스토랑’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는 말들과 가장 많이 동시 등장하는 단어들이 무엇인지 각각 찾았다. (그림 3) 프렌치 레스토랑은 ‘로맨틱’ ‘야경’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예쁘다’ ‘사진’ ‘플레이팅’이 자주 등장했다. 반면 차이니즈 레스토랑은 ‘고급스럽다’ ‘가족’ ‘맛있다’ 라는 말이 많았고, ‘사진 건지기 힘들다’라는 표현도 자주 등장했다. 종합해 보면, 한국의 중식당들은 캐주얼 식당이든, 파인다이닝이든 모두 맛과 전통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반면 최근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중식당들은 트렌디함과 세련됨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홍콩의 두들스, 영국의 하카산, 야무차 등이 그랬다.

… 레스토랑을 구성하는 4개의 요소, 즉 메뉴, 인테리어, 서비스, 기타 요소가 하나의 스토리로 통합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셰프가 좋은 식재료로 요리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통합된 1개의 컨셉이 분명하지 못하면 그 레스토랑은 차별화되지 않는다. 즉, 모던눌랑을 ‘1930년대 상하이 신여성이 즐기던 공간’이라고 분명하게 정의했기 때문에 여러 팀에서 일하는 내부 직원들이 다양한 상황에서도 분명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고, 이에 따라 식당에 찾아온 고객 역시 그런 하나의 컨셉을 분명하게 받아들이고 타인에게 전파할 수 있다.

… 썬앳푸드의 김경식 팀장은 “우리는 중식 내에서 경쟁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중식당 간의 경쟁이 아니라 외식 시장의 모든 플레이어와 경쟁한다고 보고, 중식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이지 않는 수직적 확장과 고급화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에 따라 모던눌랑은 2018년말 브랜드 리뉴얼을 준비하고 있다. 핵심은 메뉴 재정립이다. 짜장면과 볶음밥, 탕수육 등 가장 많이 선택되는 기본 중식 메뉴를 아예 없앨 계획이다. 메뉴 가짓수를 줄이고 칵테일도 2종만 남길 생각이다. 이렇게 하면 현재 고객 중 약 30%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 대신 새로운, 좀 더 트렌디하고 젊은 고객층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리서치는 꼼꼼하게, 실행은 과감하게. 정체된 입병약 시장 판도 바꾸다

경험이 적었던 B2C 의약품 사업에 진출한 코오롱제약이 첫 신제품 ‘아프니벤큐’로 9개월 만에 시장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

1) 겉보기에는 성장이 정체된 구내염 치료제 시장이지만 기존 제품들에 만족하지 못해 시장에서 제외돼 있었던 ‘비고객’ 환자 65%의 존재를 파악하고 이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제품을 설계

2) 약사를 공략하는 영업조직의 규모가 작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최종소비자 대상의 브랜드/마케팅 전략을 추진

3) 대표이사부터 담당 부서장과 PM, 외부 컨설팅 업체까지 4년간의 준비기간 동안 제품의 철학을 공유하고 신뢰를 형성

… 코오롱제약은 이 약물을 세 가지 질병을 모두 치료할 수 있는 ‘만능 물약’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몸의 어딘가가 불편하거나 아플 때 그 특정 부위를 치료하거나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약을 산다. 목이 아프면 인두염약을 사고, 이가 아프면 치은염약을 산다. 미리 약을 사뒀다가 목이 아프면 목에 바르고, 잇몸이 아프면 잇몸에 바르자는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즉, 이 약이 세 가지 질병 처치에 모두 효과가 있다고 해도 그중 하나에만 초점을 두고 브랜드를 만들어야 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 “기존 제품에 로열티가 있는 사람들을 스위칭 하는 데는 한계가 있겠지만 대신 잠재 수요자들이 많이 있었다. 입병의 불편함을 참지 말고 가글 1분만 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서 구매를 유발하는 전략을 세웠다”고 말했다. 1차 목표는 오라메디와 알보칠의 양강 구도를 깨고 3자의 대결 구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삼국지(三國志)의 천하삼분지계처럼 우리는 삼구지(三口志)의 천하삼분지계를 세웠다.”

… 기존 구내염 약품은 서로의 강점과 약점이 분명했기에 장기간의 불편함과 순간적인 아픔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불편하지 않고 아프지 않은 가글 형태로 만들어진 아프니벤큐는 두 가지 문제에서 자유로웠다. 대신 “가글이 약효가 있을까”라는 새로운 문제를 얻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입병엔 가글이 치료제입니다”를 통해 혁신 제품의 효력이 불분명하다는 생각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생각의 전환만으로는 구매하지 않는다. 그래서 광고와 패키지 디자인이 동원돼 사용행동과 구매행동의 전환을 유도했다. 광고는 가글이라는 다소 낯선 행동을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뜯고 붓고 1분 동안 가글가글”이라고 사용법을 설명하면서 불편하거나 아프지 않다는 점도 자연스럽게 전달했다. 패키지 디자인도 병에 담거나 사각형 파우치 대신 스틱형 파우치로 포장하면서 가글이라는 행동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약효가 극대화되는 3일 동안 하루 3번의 가글을 유도하기 위해서 9개를 포장했다.

… “무엇이 필요하다”처럼 니즈를 가르치려 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무엇이 좋다”처럼 전문가의 까다로운 입맛을 가르치면 성공하는 사례가 있다. 시장에서 실패한 세그웨이나 3D TV의 경우 굳이 필요하지 않은 니즈를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나 다수의 초기 애플 제품의 경우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형태, 색깔, 촉감, 소리를 통해서 더 나은 경험이 제공된다’는 점은 가르치는 것이 가능했다. 실제로 애플은 소비자 조사 결과의 가중치를 낮추고 CEO와 CDO를 포함한 디자인 전문가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제품을 출시했다. 물론 시장 성공과 실패에는 다양한 원인이 한꺼번에 작동하지만 소비자에게 수준 높은 선호(취향)를 가르치는 것도 하나의 접근법일 것이다.

뭘 원하는지 묻기 전에 무엇이 옳은가를 말해보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마케팅 연구의 대상도 변해왔다. 특히 극도의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시대에 마케팅의 목표는 불확실성의 제거에 맞춰지고 있다. 마케팅 불확실성의 원천은 점차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처음에는 제품 속성의 효용이었고, 이후 구매 상황이었다가 이제는 구매와 관련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특히 과거에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던 도덕성과 자율성이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 소비자들은 기업의 의사결정자가 어떠한 철학과 정치적 의견을 가지고 조직을 운영하는지에 관해서도 관심이 지대하다. 이제는 제품이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속성을 이해하고 제품을 선택한 뒤 소비하는 ‘제품 위주의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따르지 않는다. 이와 달리 제품이 생산, 판매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변수를 고려해 제품을 선택하고, 선택한 제품을 소비하면서 만들어낸 경험을 적극 공유하는 ‘경험 위주의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의 선택 전, 소비 후의 모든 일상적 경험이 마케팅의 불확실성의 원천으로 간주된다.

… 마케팅 불확실성의 원천은 점차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처음에는 제품 속성의 효용이었고, 이후 구매 상황이었다가, 이제는 구매와 관련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본 글에서는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학계에서 주요하게 다루지만 국내 마케팅 실무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는 추가적인 불확실성의 원천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소비 전 제품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도덕(morality)이며, 또 다른 하나는 소비 후 경험 공유에 영향을 미치는 자율성(empowerment)이다.

… 애플은 2016년 연말 광고에 두려움을 주는 외모 때문에 동굴에서 혼자 사는 어두운 분위기의 프랑켄슈타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애플스럽지 않은 이 광고의 주인공인 프랑켄슈타인은 노래는 못하지만 친구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열심히 연습하고 연주 음악을 아이폰에 녹음한 뒤 동네 사람들이 잔뜩 모인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나와서 열심히, 하지만 어설프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의 흉물스런 외모에 프랑켄슈타인을 멀리하는 어른들과 달리 외모나 목소리에 편견이 없는 어린이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결국 모두가 다 함께 합창하며 “모두에게 마음을 여세요(Open your heart to everyone)”라는 말로 마무리된다.

… 이제까지 소개한 여러 광고는 이전 광고들과 크게 다르다. 예전에는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 더 나은 삶을 보여주거나 따뜻한 느낌을 전달하려고 했으나 최근 광고는 윤리적인 구호를 분명하게 외치고 있다. 예전 광고가 권력, 명성, 아름다움, 성적 매력을 통해 제품의 장점을 소구했다면 오늘날의 광고는 사람들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집중한다. 즉, 오늘날의 광고는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주는 대신 무엇이 옳은가에 관한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 2013년 11월, 연말 휴일을 겨냥해 코크제로(Coke Zero)는 독특한 제안을 했다. 모든 연령층을 겨냥해 모두가 참여할 수 있으며 상품이 따르는 스웨터 전쟁(Sweater battle)이라는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이 이벤트는 예쁘거나 멋진 스웨터를 만들고 뽑는 이벤트가 아니라 못생긴 스웨터를 제작하고 뽑는 이벤트였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연말 휴일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신 집에 찾아가면 할머니가 오래된 못생긴 스웨터를 입고 있다는 점에서 창안한 이벤트로, 참가자는 색상, 패턴, 아이콘을 선택해 스웨터를 만든 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친구들에게 투표를 장려하고, 2013년 12월1일에 투표를 가장 많이 받은 100개의 스웨터는 실제로 생산돼 사용자의 집에 보내지는 형식이었다. 이 이벤트는 객관적인 우월함이 필요한 멋지고 잘난 것이 아니라 자율적이고 주관적인 평가가 주가 되는, 못생기고 모자란 것을 찾는 시합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 결론적으로, 북미와 유럽의 소비자들과 마찬가지로 국내 소비자들도 도덕성이 결부된 사회 문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본인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공유할 준비가 돼 있으므로 국내 마케터들은 깊게 고민한 후에 조심스럽게 마케팅 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 입장에 충분히 공감하지 않고 단순히 “좋아요”를 모으거나 상위 부서에 보고하기 위해 급조한 캠페인은 회복하기 어려운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정부가 발표했다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던 ‘가임 여성 인구수가 표시된 대한민국 출산지도’다. 우리가 보내려는 메시지가 도덕적으로 옳은지 먼저 확인하고, 우리가 전개하려는 마케팅 활동이 소비자들에게 충분한 자율성을 담보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민감하고 똑똑해진 소비자들의 선택에 불확실성을 줄여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