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보관물: 도덕

화장을 오래 하는 여성 도덕-윤리와 무슨 관계?

  • 무엇을 왜 연구했나?

아름다우면 호감을 산다는 ‘뷰티 프리미엄’은 심리학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매력적으로 보이는 사람일수록 사람들이 더 쉽게 기억하고, 실제로 돈도 더 많이 번다. 뷰티 프리미엄은 여성에게서 더욱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여성이 스스로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강한 압박을 받는다는 연구결과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투자하는 노력을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화장품 브랜드 메이블린 (Maybelline)의 슬로건은 “어쩌면 원래 타고났는지도 몰라. 어쩌면 메이블린일지 몰라(Maybe she’s born with it. Maybe it’s Maybelline)”이다. 이 슬로건은 자사의 화장품이 적당한 수준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화장을 통해서 매력적인 모습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사람들은 과한 노력과 급격한 변화는 싫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애리조나주립대 샘퍼 교수와 동료 연구자들은, 외출 준비에 시간을 많이 쓰는 여성을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궁금해 했다. 구체적으로는, 화장을 하고 머리를 손질하는 것은 일시적으로(transient) 본래 모습을 바꾸기(transformative) 때문에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 무엇을 발견했나?

예비 실험에서는 143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아침 외출 준비에 시간을 많이 쏟았다는 것을 남에게 말하기 싫어하는지 검증했다. 절반의 참가자는 옷을 고르고 화장하고 머리를 손질하는데 총 90분 걸린다고 상상하도록 요청받았고, 다른 절반은 30분 걸린다고 상상하도록 요청받았다. 외출 준비에 걸린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꺼려지는지 7점 척도로 물어보았더니, 외출 준비를 오래했다고 상상한 참가자들이 더욱 꺼렸다 (4.18 vs. 2.80).

본 실험에서는 102명의 일반인(여성 33.3%)을 대상으로 외출 준비에 들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도덕성이 훼손되는지 검증했다. 우선 제나(Jenna)라는 가상의 24세 여성 직장인을 상정한 후 제나의 하루 일과를 들려주었다. 이 때 절반의 참가자에게는 제나가 화장과 머리손질 등 외출 준비를 1시간 45분 동안 한다고 알려주었고 다른 절반에게는 10분 만에 끝낸다고 알려주었다. 그런 다음 제나가 얼마나 윤리적인 사람인지에 대해 질문했다. 도덕, 윤리, 성실, 진실과 같은 형용사에 대한 질문에서는 5.13 vs 5.62의 결과가 나왔고,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 잃어버린 지갑 찾아주기 등 윤리적 행동에 대한 질문에서는 4.30 vs. 4.89의 결과가 나왔다. 즉 응답자들은 제나가 외출준비를 짧게 할 경우 더 윤리적인 사람일 것이라 봤다.

다음 실험에서는 300명의 여성 일반인을 대상으로 더 자세한 실험을 했다. 제나가 저녁파티에 참석한다는 상황을 설정하고, 외모를 꾸미는데 들이는 시간뿐 아니라 준비의 종류 역시 3가지로 분류했다. (1) 머리와 색조화장 (2) 다리에 태닝 스프레이 뿌리기 (3) 스킨클렌저와 보습크림 바르기였다. 그런 다음 제나의 도덕성과 진실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앞서 실험과 마찬가지로 응답자들은 제나가 머리와 색조화장을 하고 태닝 스프레이를 뿌리는 등 외모를 꾸미는데 시간을 많이 쓸 수록 덜 윤리적인 사람일 것이라 평가했다.(2.33 vs. 1.43, 3.03 vs. 2.10) 하지만 스킨클렌저와 보습크림을 바르는 데는 시간을 오래 들인다 해서 도덕성 평가점수가 크게 낮아지지 않았다. (1.91 vs. 1.74).

 

  • 연구 결과가 어떤 교훈을 주나?

도덕과 윤리가 중요하게 작동하는 사회생활을 할 때에는, 외모를 꾸미는데 시간을 적게 들였고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이득이다. 실제로 몇몇 화장품 광고는 “몇 분만 들이면 잡티없이 보인다”는 광고를 통해 준비시간이 적게 든다는 점을 강조하거나 자연스러움을 돋보이게 해준다는 메시지를 통해 원래의 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논문의 제1저자인 샘퍼 교수는 화장품이 넘쳐나는 현재의 시장 상황에서 자신의 연구 결과가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력적으로 보이려는 노력이 항상 도덕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예를 들어, 취업 인터뷰를 위해서 화장할 때는 오래 준비하더라도 비윤리적이라고 비난받지 않으며, 화장이 아니라 운동으로 외모가 변하는 경우에도 비윤리적이라고 비난받지 않는다.

즉 급격한 변화의 이유가 모두가 납득할 만큼 분명하거나 또는 급격한 변화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경우, 매력적으로 보이려는 노력이 도덕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결과를 확장하면, 영구 눈썹문신 시술이나 성형수술처럼, 화장과 달리 원래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서 효과가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경우, 도덕성 평가에는 영향이 없을 수도 있다.

 

뭘 원하는지 묻기 전에 무엇이 옳은가를 말해보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마케팅 연구의 대상도 변해왔다. 특히 극도의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시대에 마케팅의 목표는 불확실성의 제거에 맞춰지고 있다. 마케팅 불확실성의 원천은 점차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처음에는 제품 속성의 효용이었고, 이후 구매 상황이었다가 이제는 구매와 관련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특히 과거에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던 도덕성과 자율성이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 소비자들은 기업의 의사결정자가 어떠한 철학과 정치적 의견을 가지고 조직을 운영하는지에 관해서도 관심이 지대하다. 이제는 제품이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속성을 이해하고 제품을 선택한 뒤 소비하는 ‘제품 위주의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따르지 않는다. 이와 달리 제품이 생산, 판매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변수를 고려해 제품을 선택하고, 선택한 제품을 소비하면서 만들어낸 경험을 적극 공유하는 ‘경험 위주의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의 선택 전, 소비 후의 모든 일상적 경험이 마케팅의 불확실성의 원천으로 간주된다.

… 마케팅 불확실성의 원천은 점차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처음에는 제품 속성의 효용이었고, 이후 구매 상황이었다가, 이제는 구매와 관련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본 글에서는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학계에서 주요하게 다루지만 국내 마케팅 실무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는 추가적인 불확실성의 원천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소비 전 제품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도덕(morality)이며, 또 다른 하나는 소비 후 경험 공유에 영향을 미치는 자율성(empowerment)이다.

… 애플은 2016년 연말 광고에 두려움을 주는 외모 때문에 동굴에서 혼자 사는 어두운 분위기의 프랑켄슈타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애플스럽지 않은 이 광고의 주인공인 프랑켄슈타인은 노래는 못하지만 친구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열심히 연습하고 연주 음악을 아이폰에 녹음한 뒤 동네 사람들이 잔뜩 모인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나와서 열심히, 하지만 어설프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의 흉물스런 외모에 프랑켄슈타인을 멀리하는 어른들과 달리 외모나 목소리에 편견이 없는 어린이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결국 모두가 다 함께 합창하며 “모두에게 마음을 여세요(Open your heart to everyone)”라는 말로 마무리된다.

… 이제까지 소개한 여러 광고는 이전 광고들과 크게 다르다. 예전에는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 더 나은 삶을 보여주거나 따뜻한 느낌을 전달하려고 했으나 최근 광고는 윤리적인 구호를 분명하게 외치고 있다. 예전 광고가 권력, 명성, 아름다움, 성적 매력을 통해 제품의 장점을 소구했다면 오늘날의 광고는 사람들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집중한다. 즉, 오늘날의 광고는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주는 대신 무엇이 옳은가에 관한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 2013년 11월, 연말 휴일을 겨냥해 코크제로(Coke Zero)는 독특한 제안을 했다. 모든 연령층을 겨냥해 모두가 참여할 수 있으며 상품이 따르는 스웨터 전쟁(Sweater battle)이라는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이 이벤트는 예쁘거나 멋진 스웨터를 만들고 뽑는 이벤트가 아니라 못생긴 스웨터를 제작하고 뽑는 이벤트였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연말 휴일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신 집에 찾아가면 할머니가 오래된 못생긴 스웨터를 입고 있다는 점에서 창안한 이벤트로, 참가자는 색상, 패턴, 아이콘을 선택해 스웨터를 만든 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친구들에게 투표를 장려하고, 2013년 12월1일에 투표를 가장 많이 받은 100개의 스웨터는 실제로 생산돼 사용자의 집에 보내지는 형식이었다. 이 이벤트는 객관적인 우월함이 필요한 멋지고 잘난 것이 아니라 자율적이고 주관적인 평가가 주가 되는, 못생기고 모자란 것을 찾는 시합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 결론적으로, 북미와 유럽의 소비자들과 마찬가지로 국내 소비자들도 도덕성이 결부된 사회 문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본인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공유할 준비가 돼 있으므로 국내 마케터들은 깊게 고민한 후에 조심스럽게 마케팅 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 입장에 충분히 공감하지 않고 단순히 “좋아요”를 모으거나 상위 부서에 보고하기 위해 급조한 캠페인은 회복하기 어려운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정부가 발표했다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던 ‘가임 여성 인구수가 표시된 대한민국 출산지도’다. 우리가 보내려는 메시지가 도덕적으로 옳은지 먼저 확인하고, 우리가 전개하려는 마케팅 활동이 소비자들에게 충분한 자율성을 담보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민감하고 똑똑해진 소비자들의 선택에 불확실성을 줄여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