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업계를 중심으로 팝업스토어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기업들이 유행에 편승하면서 비슷한 콘셉트의 팝업스토어가 우후죽순 쏟아져 이제 더 이상 신선한 아이디어가 등장하기 어렵고, 팝업스토어의 수명이 다한 게 아니냐는 회의론이 불거지고 있다…
온라인 마케팅 활동은 데이터로 추적되기 때문에 비용 대비 효과가 분명히 드러나는 반면 팝업스토어를 비롯한 오프라인 마케팅 활동은 측정되는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고 체감되기 쉽다. 그러나 팝업스토어는 오프라인 마케팅이지만 데이터 기반의 성과 측정이 가능하다.
… 넥스트 팝업스토어는 브랜드가 특정 가설을 갖고 시작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검증하는 실험실로 변모할 것으로 전망한다. 프로젝트 렌트는 ‘초콜릿을 프리미엄 디저트로 포지셔닝한다’라는 팝업스토어의 가설을 세운 뒤 평균 체류 시간, 방문객 수 뿐만 아니라 제품에 대한 인상, 재방문 및 입소문 의향 등 정성, 정량적 데이터를 통해 ‘소비자들이 가나초콜릿을 프리미엄 디저트로 즐기는 경험을 낯설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검증했다…
… 이런 이유로 결국 데이터를 수집하는 측정 도구를 붙여 가설을 검증하는 방향으로 팝업스토어가 변모할 것이라 본다. 특정 지역 혹은 특정 소비자를 대상으로 구체적인 가설을 세워 검증하려는 특화된 팝업스토어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브랜드가 세운 가설이 팝업스토어를 통해 잘 검증되면 지속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팝업스토어가 아닌 다른 수단을 활용하는 쪽으로 마케팅 전략을 바꾸는 과정에서 포화 상태에 가까운 팝업스토어 시장이 정리되는 양상을 띨 것이다.
신한카드는 고객 개개인의 취향과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할인과 이벤트 등의 혜택을 앱으로 전달하는 초(超)개인화 프로젝트를 3년에 걸쳐 전사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하는 것처럼 빅데이터 분석과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사용해 2만5000개의 소비 패턴을 정립하고 그에 따라 고객이 딱 원하는 혜택을, 딱 원하는 타이밍, 메시지, 채널(TMC)로 자동 전달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이를 위해 성별, 연령, 요일, 날씨 등에 따라 할인 혜택을 전하는 마케팅 메시지가 달라지는 행동경제학 실험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규모로 실시했다.
… 초개인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담당자들이 문제의식을 가진 게 있었다. 빅데이터사업본부 이중재 부부장은 “시스템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객의 입장에서는 느끼는 것은 자기에게 떨어지는 메시지이며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고객이 초개인화를 실감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한다. 즉, TMC 중에서 T(타이밍)와 C(채널)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개선해나갈 수 있지만 M(메시지)은 근원적으로 섬세한 인간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 해법으로 거론됐다. 행동경제학은 풍부한 연구 결과와 다양한 성공 사례로 해외에서는 그 효과가 증명됐다. 최근 20년간 북미 마케팅 박사 과정의 절반 이상은 행동경제학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서구의 공공기관이나 기업 현장에서도 다양한 프로젝트가 수행되고 있다.
…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며 연구팀은 행동경제학의 여러 기법을 수집한 뒤 이 실험에 적용 가능한지 여부를 검토했다. 먼저 행동경제학 연구자들의 바이블인 ‘Behavioral Economics Guide’와 ‘Nudge Database’를 기반으로 하고 최신 연구에서 밝혀진 새로운 기법을 추가해 총 108개의 기법을 수집했다. 이 중에서 중복되거나 충돌하는 기법은 제외하고, 2000년 이후 반복적으로 효과가 검증돼 연구자들에게 의미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기법들만 10개 남겼다. 선택된 10개의 기법이 적용된 메시지를 제작한 뒤 연구팀은 신한카드 담당자들과 내용을 공유했다. 현업 경험이 많은 사람이 보기에는 어떤 기법이 좋은지에 대한 선호도도 알아야 했고, 규제가 빡빡한 금융업의 특성상 준법감시팀의 심의도 통과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5가지 행동경제학 기법이 선택됐다.
… 신한카드 마케팅전략 부서는 매회 약 20만 명의 페이판 앱 사용자에게 6가지 메시지 중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서 발송했다. 메시지당 약 3만 3000명이 배정된 셈이다. 발송일은 2019년 1월 11일(금), 1월15일(화), 1월17일(목)이었다… 종합하자면, 이 실험은 무작위로 선발된 59만 2589명의 신한카드 가입자를 대상으로 동일한 오퍼를 동일한 채널로 보내되 조건을 18가지(6가지 메시지 × 3가지 타이밍)로 달리 만들어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행동경제학을 적용한 커뮤니케이션이 효과가 있는지를 검증한 것이다.
… 요일과 날씨에 따라서 행동경제학의 효과가 다르다는 결과를 해석할 때에도 한국적 특성을 고려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인은 일상에서 합리적으로 생각하면서 바쁘게 살아가는 편이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행동경제학이 전반적으로 효과가 없다. 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나는 특수 상황에서는 행동경제학이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감정적 혹은 쾌락적으로 생각할 여유가 생기는 주말과 금요일, 또 미세먼지 때문에 생기는 부정적 정서를 (쇼핑 등으로) 환기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경우 등이다. 즉, 한국에서는 일상을 벗어나는 상황이 생겨야만 비합리성이 관여하는 행동경제학이 효과가 있음이 이 실험에서 확인됐다.
… “흐름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주재우 교수와 함께 실험을 주도한 신한카드 이중재 부부장의 말이다. “예전에는 기업이 고객에게 혜택을 쫙 뿌리고 알아서 쓰라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점점 고객 각자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소비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고민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 그래야 차별점을 발견할 수 있다. 누가 이런 요일, 이런 날씨를 좋아하는지 알아내면 그에 맞는 메시지가 나가야 한다. 이런 것들을 시스템화하는 것이 초개인화다.”
과학적 회의주의는 경영에도 꼭 필요한 덕목이다. 경영 현장을 지배하는 직감과 상식에 의문을 품고 관찰과 사실에 근거해서 의사 결정을 하면 경쟁자의 무리에서 벗어나 블루오션을 개척할 수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큰 카지노 중 하나인 하라스(2010년 시저스로 개명)가 좋은 예이다. 이 카지노는 1998년 최고운영책임자로 카지노 업계 경험이 전무한 게리 러브맨(Loveman) 하버드 경영대 교수를 발탁했다. 그는 카지노 업계의 모든 통념에 회의를 품고 데이터에 기반한 사실만을 근거로 의사 결정을 하는 분석 경영을 도입했다. 우선 고객들에게 포인트 카드를 발급한 뒤 사용 이력을 조회해 고객의 카지노 출입 빈도, 게임에 쓴 금액 등의 데이터를 축적했다.
이를 통해 하라스는 ‘카지노를 가장 많이 찾는 사람은 관광객’이란 통념이 틀렸다는 것을 발견했다. 데이터 분석 결과, 실제로 하라스에서 돈을 가장 많이 돈을 쓰고 간 사람은 도박 자체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도박을 즐기는 사람은 어떤 부류였을까? 도박 중독자? 이 또한 틀린 가설이었다. 카지노 인근에 사는 목수나 교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에 따라 하라스는 기존 카지노들과는 전혀 다른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기존 카지노들은 관광객들을 타깃으로 이국적인 인테리어를 꾸미고 여행사와 연계한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이에 반해 하라스는 ‘근처 지역에 살며 지속적으로 카지노를 방문해 취미로 도박을 즐기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성실한 사회인’을 타깃 고객으로 잡았다. 가족과 함께 찾을 수 있는 카지노 분위기를 조성하고, 인근 레스토랑이나 기업과 다양한 제휴를 통해 자연스럽게 카지노로 방문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하기에 앞서 실험을 통해 효과를 검증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온라인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는 자사 웹사이트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수천 가지의 실험을 거쳐 사이트의 디자인을 바꿔왔다. 디자인을 새롭게 바꾼 사이트(실험군)와 기존 사이트(대조군)를 고객들에게 노출시켜 고객 반응과 경매 낙찰 숫자 등을 비교한다. 실험 경영에서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실험을 설계하는 것이다. 가설 개발→실험 설계→실험 실시→분석→결론 도출→재검증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과학 실험과 다를 바가 없다. 하라스의 러브맨은 “실험 때 대조군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충분한 해고 사유”라고 했고,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CEO는 실험을 실시하지 않고 웹사이트를 변경했다는 이유로 몇 명의 웹디자이너를 해고했다.
시험을 치다가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학생들이 보이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몸을 앞으로 숙여 시험지에 더욱 집중하거나 반대로 몸을 뒤로 젖힌 채 팔짱을 끼고 골똘히 생각한다. 우리의 일상생활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몸과 마음을 최대한 집중해서 해결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여유 있게 바라보라”는 식의 상반된 충고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체 뭐가 맞는 것일까?
물리적, 심리적 거리와 문제해결 능력 간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미국 코넬대와 캐나다 토론토대 공동연구팀이 간단한 실험을 했다. 한 그룹의 사람들에겐 90∼135도 각도의 자세로 뒤로 기대앉으라고 하고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70∼90도의 각도로 앞쪽으로 숙여 앉으라고 요청했다. 그런 다음 두 그룹에 어려운 과제를 똑같이 줬다. 실험 결과 뒤쪽으로 기대앉은 그룹이 과제를 더 쉽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물리적 거리가 아닌 심리적 거리의 영향을 조사했다. 한 그룹의 참가자들은 “컴퓨터는 무엇의 일종인가” “청량음료는 무엇의 예인가” 등 특정 대상의 상위 카테고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에 대답하도록 했다. 이는 추상적 생각을 하도록, 즉 대상에서 심리적 거리를 두도록 만든다. 두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에게는 “컴퓨터의 예를 들어라” “청량음료의 예를 들어라” 등 하위 카테고리를 생각하게 하는 질문을 했다. 이는 구체적 생각을 하도록, 즉 대상과 심리적 거리를 줄이도록 만든다. 그런 다음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그룹 모두에 어려운 문제를 냈다. 결과는 같았다. 심리적 거리를 두고 있는 그룹이 과제를 더 쉽게 여겼다.
문제에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고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문제가 어렵지 않다고 느낄 수 있고 결과적으로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기업에서도 직원들이 이렇게 심리적, 물리적 거리를 두고 어려운 과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자. 바쁠수록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