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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인식 제품 쓰다보면 인간관계 소홀해질까

무엇을, 왜 연구했나?

최근 여러 회사에서 다양한 음성 인식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아마존은 알렉사, 애플은 시리, 마이크로소프트는 코타나, 구글은 구글 어시스턴트를 선보였으며,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빅스비, SK텔레콤은 누구, KT는 기가지니를 선보였다. LG전자는 알렉사나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한 제품을 선보였다.

주변에 음성 인식 제품이 많아지면서 강의실이나 집에서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진다. 사용자의 목소리와 헷갈린 아이폰의 시리가 강의 중인 교수님에게 “어떻게 도와드릴까요?”라고 혼자 대답하는 경우도 있고, 버거킹 광고(미국)에 삽입된 “오케이 구글, 와퍼가 무엇이지?”라는 목소리에 반응한 구글이 위키피디아에서 와퍼에 관한 설명을 자동으로 열기도 한다. 음성 인식 제품은 특히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친구가 돼주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음성 인식 제품과 쉽게 대화를 시작하며 언젠가는 영화 ‘그녀’에 나오듯이 좋은 대화 상대가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에서 배제돼 외롭다는 느낌이 들 때 실제 인간이 아닌 의인화된 (anthropomorphic) 제품과 상호 교류를 하면 어떠한 효과가 있을까?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배제됐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거나 온라인 공간의 인간관계를 확인해서 외로움을 극복해왔다. 예를 들어 봉사단체에 가입하거나 페이스북의 친구 숫자를 늘리곤 한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사회에서 배제됐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도 의인화된 제품과 상호교류를 하면 실제 인간과의 관계를 만들거나 확인하는 활동을 덜 하거나 중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무엇을 발견했나?

첫 실험에서는 ‘Amazon Mechanical Turk(아마존이 운영하는 지식 아르바이트 중계 플랫폼)’를 통해서 327명의 응답자를 모집했다. 먼저 “상상을 시각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상호 공 던지기 게임”이라는 제목하에 컴퓨터에 등장하는 내 캐릭터와 다른 3명의 캐릭터가 공을 30번 주고받는 ‘사이버볼’ 게임을 수행하게 했다. 사회에서 배제되는 조건의 참가자는 처음 3번만 공을 받은 후 그다음부터는 완전히 배제돼 다른 3명의 캐릭터가 공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만 있게 했다.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는 조건의 참가자는 공을 주고받는 모든 과정에 약 4분의 1만큼 참여하게 했다. 게임이 끝난 뒤 모든 참가자는 3가지 중 하나의 룸바(Roomba) 진공청소기를 봤다. ‘의인화된 룸바’는 제품이 똑바로 놓여 웃는 얼굴처럼 보였고, ‘비의인화된 룸바’는 제품이 90도 옆으로 놓여 얼굴처럼 보이지 않았고, ‘비의인화이면서 긍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룸바’는 90도 옆으로 놓여 있는 동시에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350개 스킨 중 하나인 바닷가 해변 스킨을 씌워두었다. 이렇게 모든 응답자에게 룸바에 관한 구매의도를 물어본 다음에 핵심 질문인 “다음 달에 가족이나 친구와 전화로 통화할 때,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통화할 예정인가요?”에 7점 척도(1 = 평균보다 훨씬 적게, 7 = 평균보다 훨씬 많이)로 응답했다.

실험 결과. 사회에서 배제된 조건에서는 사람 얼굴처럼 보이게 해 놓은 룸바를 본 응답자들이(3.25) 다른 룸바를 본 응답자들에 비해서(3.87, 4.15) 가족이나 친구에게 더 적은 시간을 쓸 것이라고 응답했다.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은 조건에서는 룸바의 의인화/비의인화가 가족이나 친구와의 통화 시간 예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 결과는 사회에서 배제되는 경우 의인화된 제품과 상호 작용을 하면 실제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의도가 줄어든다는 가설을 지지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200명의 참가자를 모집해 절반에게는 중요한 이벤트에서 스스로가 배제됐던 경험에 대해서 쓰고, 다른 절반은 어제 무슨 일을 했는지를 작성하게 했다. 그리고 모든 응답자들은 똑바로 놓여 웃는 얼굴처럼 보이는 의인화된 룸바를 봤는데 이 중 절반의 응답자에게만 “룸바가 당신을 향해서 미소 짓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인간이 아니라 기계에 불과하다는 점을 기억하세요”라는 말을 더해주었다. 이후에 본인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가를 측정하는 8개의 글에 대해서 얼마나 동의하는지를 물어봤다(예, 내 옆의 친구가 없다면 내 삶이 불가능하다, 항상 나와 함께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등).

실험 결과, 어제의 일과를 쓴 응답자들은 의인화된 룸바가 기계에 불과하다는 설명이 있건 없건 간에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는 정도에 차이가 없었다(3.48, 3.48). 하지만 사회에서 배제된 경험에 대해 적은 응답자들의 경우에는 의인화된 룸바가 기계라는 설명이 없으면 사람에 대한 필요가 줄어들고(3.14), 의인화된 룸바가 기계라는 설명이 있으면 사람에 대한 필요가 증가했다(3.78). 즉, 별도의 설명이 없을 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웃고 있는 모습의 룸바가 기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배제돼 다른 사람이 필요할 때에 룸바를 통해서 인간과의 상호작용 욕구를 충족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 결과가 어떤 교훈을 주나?

만약 누군가 최근에 아이폰 시리와 여러 번 대화를 주고받았다면 외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폰의 시리나 아마존의 알렉사가 실제 친구를 대체할 수는 없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사회적 니즈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사용자와 상호작용하는 최근의 많은 신제품은 실제 인간과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줄이고 있다. 예전에는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의 상호 교류가 필수적이었지만 인간의 형태를 가진 제품(humanlike products)의 등장 때문에 실제 인간관계는 옅어지고 있다.

하지만 본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효과는 장기적이지는 않으며 제품과 사람이 다르다는 점을 깨닫는 순간 없어진다. 결국 디자이너와 마케터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줄여주면서 동시에 진짜 인간관계에 대한 욕구를 줄이지는 않는, 인간적인 음성인식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더욱더 근본적으로는 우리도 컴퓨터나 휴대폰을 잠시 멈추고 진짜 인간을 만나서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