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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액이 구독을 자유케 하지만…‘소비 시간차’ 염두에 둬야

과거엔 생각도 못한 이런 저런 구독서비스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 가장 깊게 스며든 구독경제는 다름 아닌 미디어 콘텐츠다. 모바일 중심의 미디어 소비환경에 걸맞게 넷플릭스나 각 통신사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여기에 유튜브까지 월정액을 내면 원하는 영상을 골라 볼 수 있다.

영상만이 콘텐츠 구독서비스의 전부는 아니다. 밀리의 서재는 이북(e-book)을 바탕으로 한 책 구독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소정의 월 구독료로 3만권 가량의 책을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다. 기간을 넘긴 책은 회원의 온라인 서재에서 소멸되지만 다시 담을 수도 있다.

서비스 내용만 보면 기존 출판업체들의 반발이 있을 법 하지만 밀리의 서재는 상생의 비즈니스 모델을 택했다.

회사 관계자는 “이북이 팔리면 종이책이 안 팔린다는 출판계의 불안감 때문에 그간 이북 판매 업체에 책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한 측면이 있지만, 밀리의 서재는 이북을 대여만 하기 때문에 콘텐츠 공급이 쉬웠다”며 “이용자가 똑같은 책을 다시 구독하면 출판사는 또 한 번 금액을 지급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영상과 책을 막론하고 디지털 콘텐츠 구독서비스가 무제한 방식을 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명광 씨엘앤코 대표는 “디지털 콘텐츠가 너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냥 하나씩 구입하기 보다는 일정액을 내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 보라는 것”이라고 했다.

무제한 구독 서비스를 콘텐츠가 아닌 주류 시장에 접목한 업체도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들이 주축이 돼 창업한 데일리샷이다. 한 달에 9900원을 내면 업체와 제휴한 펍(pub)이나 바(bar)에서 매일 첫잔을 웰컴드링크 개념으로 무료로 마실 수 있다.

다만, 해당 업주들과의 상생을 위해 안주나 술을 추가 주문해야 한다. 주종은 수제맥주나 칵테일, 와인 등 매장과의 협의를 통해 정해진다.

이 회사 김민욱 대표는 “펍이나 바 문화가 20대 중후반들에게는 아직 낯설고 비용도 부담스럽기 때문에 가격적인 면에서 장벽을 낮췄다”며 “구독은 스테디하면서도 가장 발전된 형태의 커머스 모델이다. 적정 비용을 내면 이를 더 많이 이용하는 고객일수록 혜택 폭이 점점 커지지 않느냐”는 생각을 나타냈다.

기업 입장에서도 구독서비스는 여러 면에서 순기능을 가진다. 주재우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본적으로 수요예측이 된다”며 “얼마나 팔릴지 예측할 수 있으니 이에 맞춰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절감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제품) 생산량은 많지만 수요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기업은 다양한 유통경로를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구독서비스도 하나의 실험적 시도라고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경우 물류·택배 시스템이 워낙 잘 구축돼 있기 때문에 저렴한 구독서비스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한 구독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소비자의 선호도와 라이프스타일 등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더욱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또 다른 장점을 언급했다.

한번 물건을 사가면 소비자 취향에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어렵지만 기호에 따라 제품을 바꿀 수 있는 구독서비스는 상대적으로 데이터 확보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방식 등으로 또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도 있다.

부가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구독서비스 업체들의 생존과도 무관치 않은 이야기다. 조명광 대표는 “유튜브의 메인 비즈니스는 단순히 영상을 업로드 하는 게 아니다. 광고나 (이용자) 데이터”라며 “(소비자와의) 관계를 묶어둔다는 것이 구독경제의 핵심인데 이를 지속하려면 끊임없이 부가가치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플랫폼만 만들어서 구독자를 들이기만 하고 자신들의 핵심 가치가 없다면 구독모델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며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드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단순하게 구독성만 갖고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화장품 정기 배송으로 화제를 모았던 미미박스가 자체 브랜드를 갖추게 된 것도 이런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재우 교수도 “구독서비스를 하는 기업은 자신의 선호를 모르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사업을 해야 하지만 소비자의 선호가 고정되면 구독이 필요 없어질 수 있다”며 “전문가의 추천이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등 소비자들을 떠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또한 “소비자가 구독을 시작하는 순간에는 나중에 어떤 것을 좋아할지 예측하게 되는데 실제 소비와의 시간차가 벌어지면 그 예측이 빗나갈 수 있다”며 “선호가 바뀌거나 이를 잘못 예측한다는 연구결과가 많다”고 지적했다.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2만5000개 소비패턴 분석해서 혜택 제안 필요할 때 귀신같이 알려주는 ‘똑똑 카드’

Article at a Glance

신한카드는 고객 개개인의 취향과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할인과 이벤트 등의 혜택을 앱으로 전달하는 초(超)개인화 프로젝트를 3년에 걸쳐 전사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하는 것처럼 빅데이터 분석과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사용해 2만5000개의 소비 패턴을 정립하고 그에 따라 고객이 딱 원하는 혜택을, 딱 원하는 타이밍, 메시지, 채널(TMC)로 자동 전달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이를 위해 성별, 연령, 요일, 날씨 등에 따라 할인 혜택을 전하는 마케팅 메시지가 달라지는 행동경제학 실험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규모로 실시했다.

… 초개인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담당자들이 문제의식을 가진 게 있었다. 빅데이터사업본부 이중재 부부장은 “시스템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객의 입장에서는 느끼는 것은 자기에게 떨어지는 메시지이며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고객이 초개인화를 실감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한다. 즉, TMC 중에서 T(타이밍)와 C(채널)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개선해나갈 수 있지만 M(메시지)은 근원적으로 섬세한 인간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 해법으로 거론됐다. 행동경제학은 풍부한 연구 결과와 다양한 성공 사례로 해외에서는 그 효과가 증명됐다. 최근 20년간 북미 마케팅 박사 과정의 절반 이상은 행동경제학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서구의 공공기관이나 기업 현장에서도 다양한 프로젝트가 수행되고 있다.

…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며 연구팀은 행동경제학의 여러 기법을 수집한 뒤 이 실험에 적용 가능한지 여부를 검토했다. 먼저 행동경제학 연구자들의 바이블인 ‘Behavioral Economics Guide’와 ‘Nudge Database’를 기반으로 하고 최신 연구에서 밝혀진 새로운 기법을 추가해 총 108개의 기법을 수집했다. 이 중에서 중복되거나 충돌하는 기법은 제외하고, 2000년 이후 반복적으로 효과가 검증돼 연구자들에게 의미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기법들만 10개 남겼다. 선택된 10개의 기법이 적용된 메시지를 제작한 뒤 연구팀은 신한카드 담당자들과 내용을 공유했다. 현업 경험이 많은 사람이 보기에는 어떤 기법이 좋은지에 대한 선호도도 알아야 했고, 규제가 빡빡한 금융업의 특성상 준법감시팀의 심의도 통과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5가지 행동경제학 기법이 선택됐다.

… 신한카드 마케팅전략 부서는 매회 약 20만 명의 페이판 앱 사용자에게 6가지 메시지 중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서 발송했다. 메시지당 약 3만 3000명이 배정된 셈이다. 발송일은 2019년 1월 11일(금), 1월15일(화), 1월17일(목)이었다… 종합하자면, 이 실험은 무작위로 선발된 59만 2589명의 신한카드 가입자를 대상으로 동일한 오퍼를 동일한 채널로 보내되 조건을 18가지(6가지 메시지 × 3가지 타이밍)로 달리 만들어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행동경제학을 적용한 커뮤니케이션이 효과가 있는지를 검증한 것이다.

… 요일과 날씨에 따라서 행동경제학의 효과가 다르다는 결과를 해석할 때에도 한국적 특성을 고려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인은 일상에서 합리적으로 생각하면서 바쁘게 살아가는 편이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행동경제학이 전반적으로 효과가 없다. 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나는 특수 상황에서는 행동경제학이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감정적 혹은 쾌락적으로 생각할 여유가 생기는 주말과 금요일, 또 미세먼지 때문에 생기는 부정적 정서를 (쇼핑 등으로) 환기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경우 등이다. 즉, 한국에서는 일상을 벗어나는 상황이 생겨야만 비합리성이 관여하는 행동경제학이 효과가 있음이 이 실험에서 확인됐다.

… “흐름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주재우 교수와 함께 실험을 주도한 신한카드 이중재 부부장의 말이다. “예전에는 기업이 고객에게 혜택을 쫙 뿌리고 알아서 쓰라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점점 고객 각자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소비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고민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 그래야 차별점을 발견할 수 있다. 누가 이런 요일, 이런 날씨를 좋아하는지 알아내면 그에 맞는 메시지가 나가야 한다. 이런 것들을 시스템화하는 것이 초개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