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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당신의 비합리적 소비

같은 돈에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 심적 회계
비합리적인 선택을 통해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어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현금이나 체크카드를 쓸 때보다 씀씀이가 커진다. 국내 신용카드 전문 사이트 카드고릴라가 1503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27.7%가 신용카드의 무분별한 소비 방지를 위해 체크카드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똑같은 돈인데 어떤 수단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씀씀이가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행동, 그 이면을 파헤쳐 보자.

현금과 신용카드, 같지만 다르다

사람들이 상품권이나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 씀씀이가 커지는 것은 심적 회계 때문이다. 심적 회계란 201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리처드 틸러가 제시한 행동경제학적 개념이다. 심적 회계는 같은 돈이지만 사람들이 돈을 여러 용도, 혹은 계정으로 나눠 인식하고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다. 즉 기업이 회계장부를 작성하듯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동일한 돈에 대해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개인은 머릿속으로 ‘손실’, ‘보너스’ 등의 계정으로 돈을 분류한다. 국민대 경영학과 주재우 교수는 “심적 회계란 회계를 머릿속으로 하는 개념”이며 “이 과정에서 같은 돈을 다르 게 인식하는 등 비합리적인 오류와 실수가 발생한다”고 전했다.

MIT의 프레렉·시메스터 연구팀의 실험은 이러한 심적 회계의 영향을 잘 보여준다. 당시 연구팀은 미국 프로농구경기 입장권을 이용한 비공개 입찰 경매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참가자의 절반에게는 입장권의 현금 구매만, 나머지 절반에게는 입장권의 신용카드 결제만 가능하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후 진행된 경매에서 입장권을 구매하겠다고 나선 사람들 중 현금으로 구매하겠다는 사람의 수는 신용카드를 쓰는 사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사람들이 현금결제를 손실로 인식하지만 한 달 후 빠져나가는 신용카드 결제대금은 손실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 교수는 “사람들은 신용카드로 결제할 때와는 달리 현금으로 돈을 지불할 때 경제학적 손해인 손실과는 별개로 돈을 지불할 때 느끼는 심리학적 고통이 더해진다”며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 심적 회계를 설명했다.

합리적 선택을 위한 행동경제학

심적 회계는 우리의 실생활에서 비합리적인 결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만 주 교수는 “비합리적인 개인의 선택이 항상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전했다. 토론토대 경영학과 소만 교수의 연구에서는 행동경제학을 활용해 일용직 노동자들이 저축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급여를 받았을 때 해당 급여를 하나의 계정에 모으지 않고 여러 개의 계정에 나눠 돈을 저축하는 방법이다. 연구 결과 돈을 나눠 저축할 경우 실제로 지출액이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은 금액의 돈이지만 100달러가 있는 계정에서 돈을 소비할 때보다 50달러가 있는 계정 2 개에서 돈을 쓸 때 씀씀이가 줄어든 것이다. 주 교수는 “비합리적인 선택이 나쁜 건 아니다”며 “실제로 비합리적인 행동을 이용해서 저축을 유도하거나 극복하는 식으로 충분히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금융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안세현 기자, 합리적 당신의 비합리적 소비, 성대신문, 2022.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