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몰고 노숙하고 구걸하는 기자들 – 경험시대 발맞춘 체험기사 봇물…“마케팅 기능 점점 고도화”

이벤트나 공간, 실험영상 등을 통한 기업들의 경험마케팅은 이제 하나의 대세로 자리잡았다. 다만, 경험시대는 기업들 사이에서만 부각되는 키워드는 아니다. 언론계에서도 부쩍 ‘체험저널리즘’을 표방한 콘텐츠가 나타나고 있다.

체험저널리즘은 기자가 직접 특정 직업이나 이슈에 뛰어들어 현장분위기와 체험을 르포 형태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어찌 보면 기업의 간접경험 전달과 비슷하지만 기자가 직접경험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보도자료만으로도 기사 하나 뚝딱 만드는 시대에서 ‘발로 뛴다’는 언론의 기본으로 돌아간 셈이다. 체험저널리즘은 언론사의 무분별한 난립과 트래픽을 올리기 위한 어뷰징의 홍수 속에서 차별화를 위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보다 생생한 현장감을 무기로 뉴스소비자들의 눈을 끌기 위한 노력이다. 김위근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일반적인 기사문법과는 다르기 때문에 (뉴스) 수용자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다”며 “잘 만들어졌다면 언론사의 브랜드를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생활밀착형 기사가 다수인지라 브랜드 인식을 제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의 진보도 체험형 기사를 양산시키는 요소 중 하나다. 김 연구위원은 “취재 기자재나 통신망의 발전도 간접적인 이유가 될 수 있다”며 “아무래도 기자재가 소형화되면 즉각적인 기사전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합법적이라는 전제만 있다면 최근 등장하는 체험저널리즘은 직업과 상황을 가리지 않는다. 명절시즌 택배기사부터 지하철 천장 청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극한직업을 체험하는 기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체험형 기사들이 수없이 쏟아지는 형국이지만 눈에 띄는 케이스들은 있다. <중앙일보>의 박민제 기자는 택시기사 체험에 나섰다. 지난 4·13 총선 당시 승객들로부터 생생한 민심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4년 전 취재 목적으로 취득한 택시면허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헤럴드경제> 서상범 기자는 ‘예비아빠’라는 개인사를 살려 만삭체험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장비를 착용하고 일주일간 생활하면서 느낀 점을 솔직하게 풀어놓은 기사를 지난달 내놓았다. <한겨레> 이정국 기자는 ‘웃픈’ 체험기사로 화제가 됐다. 지난해 11월 SPA 브랜드 H&M과 명품 브랜드 발망의 콜라보레이션 이벤트 현장에서 노숙을 한 것. 자칭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이 기자는 오픈을 기다리는 패션 피플들 사이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사이즈에 맞지 않는 옷까지 구입했다. 그야말로 생고생에 돈 낭비였지만 독자들의 큰 주목을 받은 만큼 수고가 아깝지는 않았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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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성에 그치는 체험기를 떠나 장기기획으로 용감하게 승화시킨 이들도 있다. 지난해 1월부터 약 한 달간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를 연재한 <서울신문> 특별기획팀 기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해당 리포트는 교육, 육아, 주거 등의 소주제를 나누고 상위 1% 부유층과 절대빈곤층의 라이프스타일을 극명하게 대비시켰다. 특히, 남녀기자가 각각 걸인의 하루와 최고급 호텔스위트룸을 경험하고 비교한 기사는 언론계의 큰 화제를 모았다. 반응은 뜨거웠다. 당시 팀장을 맡았던 김상연 기자는 “1면부터 3면에 걸쳐서 나간 기획이었는데 독자는 물론 타사 기자들에게도 연락이 올 정도였다”고 전했다. ‘빈부리포트’는 지난 4월 신문의 날 기념행사에서 기획탐사보도 부문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신문기사로는 보기 드물게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이들이 후속작으로 내놓은 ‘아날로그&디지털 리포트’는 스마트폰, PC와의 단절을 통해 디지털 금단현상을 경험하는 체험저널리즘의 형태로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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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체험저널리즘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신선도가 다소 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별다른 아이디어 없이 지면을 위한 체험에 국한되는 기사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김상연 기자는 “기자가 왜 체험을 해야 하는지도 몰라서는 곤란하다”며 “독자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주제로 다가가야 한다. 시선을 끌기 위한 단순한 재미 이상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위근 연구위원은 또 다른 관점에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장점도 많지만 저널리즘 윤리를 위반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기자의 주관적 경험에 기반한 기사이기 때문에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밝혔다.

 

  • 경험 넘어 아이덴티티와 참여 시대로

마케팅과 PR, 광고, 언론 영역까지 아우르는 경험시대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게 될까.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트렌드가 아니라는 데 입을 모은다. 이미 ‘경험’이라는 단맛을 본 소비자들이 과거처럼 일방적 커뮤니케이션 대상이 될 이유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경험시대는 새로운 소비자 패턴을 가능케 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한상린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보고 만지는 경험 이상으로 소비자가 (제품이나 서비스에) 큰 역할을 하게 되는 ‘참여형 마케팅’으로 진화하게 될 것”이라며 “고객이 기업에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제품 개선에 참여하는 등의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본다”고 예측했다. 최장순 엘레멘트 공동대표는 경험의 다음 단계로 ‘아이덴티티’를 제시하며 “유행을 쫓아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이 연애라면 아이덴티티 브랜딩은 소비자가 브랜드와 결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약, 백년가약을 맺을 자격이 된다면 이는 소비자의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주재우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전통적인 마케터들의 역할 축소를 예견했다. 주 교수는 “마케팅을 연구한 이들보다는 공간을 창출한 경험을 가진 아티스트, 혹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마케팅을 수행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마케팅의 기능이 점점 고도화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기존 마케터들의 역할은 고객과의 접점을 마련하는 전략 설정에 국한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주 교수는 “예전에는 마케터가 소비자를 불렀다면 이제는 소비자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공간을 찾아가게 된다”며 “점점 더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 (VR같은) 가상공간까지 이르게 될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경험을 완벽하게 세팅한 공간을 찾는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체험저널리즘 역시 확대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위근 연구위원은 “(뉴스) 수용자의 관심사는 다양해지고 있지만 시공간의 제약으로 이를 모두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체험형 기사에 대한 요구는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언론사 입장에서도 ‘브랜디드 콘텐츠’ ‘네이티브 광고’ 등을 통해 수익과 연동될 수 있으므로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여기에 VR 등 경험형 미디어 기술의 발전과 보급은 체험형 기사 진화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